'한국과 20년지기' 佛건축거장 조언 "서울, 기름 퍼지듯 도시 확장 말아야"

오현주 기자I 2021.11.03 03:30:00

[줌인] 도미니크 페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이대 캠퍼스센터 설계로 韓과 인연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설계하기도
'회복할 수 있는' 도시디자인 지향
"서울, 한정된 공간 최대 활용하고
도시 위에 도시를 짓는다 생각해야"

도미니크 페로(왼쪽)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이 건축디자이너 가엘 로리오 프레보스트와 함께 전시작 ‘어번 레디메이드’(2021) 위에 나란히 앉았다.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 190명 중 한 사람인 프레보스트는 페로 감독의 부인이기도 하다. 기성 도시작품에 착안해 콘크리트·목재·철봉 등을 이용해 시각적 지표를 만든 작품은 ‘웰컴 데스크’로 ‘누구나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자리’가 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거대도시 서울에 우뚝 선 건축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라면? 서울 을지로 끝자락에 자리잡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혁신적으로 내려앉힌 이 건물을 두고 ‘우주계에서 날아온 비행선’인 줄 알았다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런데 이 ‘튀는 작품’이 2년에 한 번씩 반짝거릴 때가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는 그때다.

건축과 도시, 도시와 성장, 성장과 미래가 연결된 조화를 고민하고, 종국엔 그 어디쯤 ‘사람’을 세울 건가의 문제에 세계 건축가와 작가, 학자와 행정가가 머리를 맞대는 자리. 그 테마에 이만큼 딱 떨어지는 장소는 흔치 않다는 뜻이다. 620여년 전 쌓은 ‘흥인지문’ 옆에 ‘우주비행선’을 어울린 이 장면이 현대 도시건축의 단면이자 미래가 아닌가.

코로나19를 무릅쓰고 53개 나라, 112개 도시, 190명 작가가 참여해 역대급 규모로 연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46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폐막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오후, 메인전시장인 DDP는 끊임없이 오가는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단박에 눈에 띄는 한 사람, 도미니크 페로(67·프랑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이다. 연방 관람객의 움직임에 눈을 맞추던 그는 “다른 어려움은 다 떠나 비엔날레 자체가 개최되지 못할까 노심초사했다”며 “이렇게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활짝 웃었다.

페로 감독은 비엔날레 폐막에 맞춰 10여일의 일정으로 서울로 날아왔다. 동행인이 있다. 건축디자이너 가엘 로리오 프레보스트. 이번 비엔날레에 ‘어번 레디메이드’(2021)란 전시작을 내기도 한 그이는 페로 감독의 부인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펼친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메인전시 중 ‘도시전’ 전경. 중앙에 가엘 로리오 프레보스트의 ‘어번 레디메이드’(2021)가 섰다. 전시장 곳곳에 세운, 기성 도시작품에 착안해 콘크리트·목재·철봉 등을 이용해 시각적 지표를 만든 ‘어번 레디메이드’는 ‘웰컴 데스크’로 ‘누구나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자리’가 됐다(사진=516 Studio).


◇“미래 위한 과거, 과거 위한 미래… 둘 다 잡아야”

막 내리는 비엔날레를 총괄한 이에게 묻는 소회, 솔직히 이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푸른 눈에 과연 서울은 어떻게 비칠까. “20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차이가 있다. 그땐 무조건 다 허물고 모두 새롭게 다시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듯 보였다. 이후 좀 바뀐 듯하다.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생겼고, 도시 외관을 전통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총감독이란 직책에 앞서, 페로 감독은 ‘건축계 거장’이란 타이틀을 이미 꿰찬 인물이다. 1997년 공모한 프랑스국립도서관 설계자로 당선되며 떠들썩하게 이름을 알린 뒤, 룩셈부르크 유럽사법재판소 증축, 비엔나 DCI타워 등 굵직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연달아 맡으며 입지를 다졌다. 1997년 미스 반데 로에상, 2010년 프랑스아카데미 건축부문 금상 등을 수상했고, 프랑스 최고 권위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서훈했다.

도미니크 페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이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펼친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메인전시 중 ‘주제전’을 배경으로 섰다. 왼쪽 뒤로 장 마크 이보스 등 프랑스팀이 제작한 ‘승화’(2021)가, 오른쪽 뒤로 송진영 등 뉴욕주립대 버팔로 캠버스 건축과팀이 내놓은 ‘스틱, 스냅, 스택: 가변형 적층 격자 시스템’(2021)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국과는 20년지기다. 2004년 이화여대 캠퍼스센터(ECC)의 기본설계를 맡으면서다. 이 작업으로 센터를 준공한 해인 2008년 서울시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서울 강남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의 기본설계를 맡으며 다시 한국, 서울과의 연을 이어냈다. “ECC가 건축에 아방가르드적 면모를 들여 개인적으로도 상징적인 프로젝트였다면, 복합환승센터는 단순히 지하철역과 터널을 연결한 데서 나아가 ‘함께 사는 공간’을 도모한 의미가 큰 프로젝트였다.”

먼 나라로 찾아갈 것도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페로 감독의 건축철학이 드러난다. ‘구상에 맞추는 추상’이란 건데 “건축물이 들어설 장소가 어디인지, 어떤 동네인지 그 풍경을 보여주는 게 구체적인 ‘구상’이고, 그 위에 사고와 비전, 콘셉트를 얹는 게 ‘추상’”이란다. 이 생각은 건축물이 그저 한 시대를 살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데까지 이어졌다.

“도시디자인은 ‘미래를 위한 과거’ ‘과거를 위한 미래’ 둘 다를 지향해야 한다. 그래서 ‘전통’을 잘 살려내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구조를 유지하면서 용도를 변경하면 된다. 옛 건축물을 호텔로 꾸미고 샹들리에 하나만 달아도 다시 태어난다. 19세기, 20세기에 지어진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과거를 보호하면서 미래의 혁신을 찾아가는 것, 그게 중요하다.”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연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중 ‘주제전’ 전경(사진=516 Studio).


◇“한국 아파트, 기능 떠나 용도 고민할 때”

그 철학·신념은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크로스로드(교차로),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가’란 큰 질문을 던지고 “회복할 수 있는 도시, 그런 힘을 가진 도시”를 해답으로 내놓은 거다. 지상과 지하,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공 등 어떤 교차로에 서게 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회복력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어찌 보면 한국의 도시재생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아닌가. 일단 부수고 나서 생각하는 무분별한 개발이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니.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태어난 아파트가 한국에선 가장 특이한 형태다. 아파트라는 게 기능만 강조한 건축물이 아닌가. 이젠 기능을 떠나 용도를 고민해야 한다.” 아파트 내부에 식물을 키우는 공용공간을 만들 거나, 루프톱을 활용하는 건 차라리 ‘쉬운 예’란다. “20세기에 기능은 건축의 해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용도다. 펜이란 게 글씨 쓰는 기능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림도 그리지 않나. 그게 용도로 변화다.”

도미니크 페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이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펼친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중 건축적사무소에서 출품한 ‘발코니는 새로운 정원’(2021) 앞에 잠시 머물렀다. “한국 아파트가 이젠 기능을 떠나 용도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 페로 총감독의 생각처럼 작품은 아파트 안에서 자연적 공간으로 정원을 꾸미는 한 방식을 보여줬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내친김에 쓴소리를 좀더 들어보기로 했다. ‘대도시 서울’에 도시회복력을 심으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가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 모든 게 다 크니, 자연과 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자연에 대한 존중 없이 슬금슬금 기름 퍼지듯 도시를 확장해선 곤란하다. 이미 한정된 도시공간이라면 그 안을 최대한 활용할 것, 도시 위에 또 다른 도시를 짓는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교차로’란 주제어로 비엔날레를 끝낸 페로 감독은 결국 우리를 또 다른 교차로에 세웠다. 그 설득력이 통했을까. DDP를 거점으로 서울도시건축전시관과 세운상가에서 진행한 이번 비엔날레를 현장에서 보고 간 관람객은 12만명. 온라인으로 다녀간 60만명을 더하면 72만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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