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작
스틸판 말아 빚은 추상조각 뒤 그림자 회화
조명 비추면 환영 같은 구체적 형체 드러내
그림자 없인 완성할 수 없는 확장된 조각품
| 엄익훈 ‘발레하는 소녀’(사진=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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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두운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은 붉은 금속조각이다. 낱낱의 파편화한 개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묵직한 형상을 이뤘다. 그런데 추상 조각이 드리운 그림자가 말이다. 손동작·발동작이 유려한 발레리나가 아닌가. 조명이 만든 환영을 본 건가.
작가 엄익훈(45)은 조각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른바 ‘그림자 조각’ ‘그림자 드로잉’이다. 조각을 하고 그림도 그리는데, 궁극적으론 그림자가 없으면 완성이라 할 수 없는 조각작품을 빚어내는 거다. 이 그림자를 두고 작가는 “사물과 인접해 있지만 사물은 아니란 점에서 사물의 흔적이고, 그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체는 사라지고 흐릿한 자취만 남기는 사람의 기억과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인간의 근육과 골격을 떠올릴 형체는 돌돌 말아 연결한 스틸판. 작정하고 끊지 않으면 끊기지 않을 무한반복이 특징이다. 그런 조각에서 어찌 저런 그림자가 나오는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건 조각의 마음이니까. ‘발레하는 소녀’(2021)는 발레리나가 되고픈 조각의 속내를 비춰낸 것일 수도 있다.
7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길 표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조각의 환영: 열정’에서 볼 수 있다. 스틸·LED·우레탄페인트. 30.0×52.0×44.0(H)㎝. 작가 소장. 표갤러리 제공.
| 엄익훈 ‘거리공연에서 1’(2021), 스틸·LED·우레탄페인트, 25.0×52.0×55.0(H)㎝(사진=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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