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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본부장 방미 추진…日 대화 재개 노력도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조만간 미국을 찾아 현지 통상 고위당국자와 회동키로 했다. 시기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으나 늦어도 이달 중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중재를 통해 일본의 수출통제 강화 조치로 불거진 한일 갈등 해소 실마리를 찾자는 취지다. 미국은 한일 갈등 현안이 있을 때마다 중재 역할을 해 왔다. 중국에 대항한 ‘한미일 3각 동맹’의 중요성 때문이다. 아직 미국 트럼프 정부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 움직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특히 일본의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수출 제재로 이어지면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 같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이들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과 수요-공급 관계로 얽힌 애플이나 퀄컴 등 미국 기업에도 연쇄 피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국 경제에 민감한 트럼프 정부가 중재에 나설 명분이 설 수 있다는 계산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우리 기업은 물론 일본 기업, 국제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우리 업계와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공조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의 직접 대화도 추진 중이다. 우리 통상 당국은 이미 일본 통상 당국과 전략물자 수출 통제와 관련한 회담을 위해 일정을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표면상 이번 일부 소재 수출통제 강화 조치의 이유로 양국 신뢰 하락을 꼽고 있다. 여기엔 2008년부터 2년에 한 번꼴로 열리던 전략물자 실무회의가 공교롭게 양국 실무자 부재 때문에 2016년 이후 3년째 열리지 않은 것도 포함돼 있다. 회담 자체가 구속력 없는 실무자끼리의 단순 협의이지만 양국 간 ‘신뢰 회복’의 계기는 될 수 있다.
◇ 정부 ‘전략적 침묵’으로 선회…소극대응 비판도
정부의 물밑 대화 기조 속에서 우리 고위 당국자도 관련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유명희 본부장은 이날 대외경제장관회의 직후 기자와 만나 “국제 공조를 비롯한 여러가지를 검토 중이지만 말을 아끼고 싶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 역시 “전날 기업 총수들을 만났다는 사실만 확인해 드리겠다. 양해해달라”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 1일 일본의 수출통제 강화 조치 직후 나왔던 정부 당국자들의 강경 발언과 대조를 이룬다. 당시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국제·국내법에 따라 필요한 대응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도 지난 4일 “철회하지 않으면 반드시 상응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도 재계와의 만남에 나서고 있지만 일본에 대한 발언 수위는 조절하는 모습이다.
이같은 강경 기조의 변화는 ‘전략적 침묵’이란 분석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직접 맞대응한다면 한일 갈등국면을 정치·외교 문제로 키우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노림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나 정부 차원에서 직접 나서서 갈등을 키우기보단 산업부를 비롯한 통상 당국과 해당 기업이 주체로 나서야 이번 일을 경제 문제로 선 그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당장 일본으로부터 대체가 어려운 부품·소재·장비를 의존해야 하는 우리로서 현실적으로 일본과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갈 수 없는 만큼 불필요한 갈등 확산은 피해자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일본도 실제 수출 제재에 나선다면 자국 기업도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미국 등 국제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도 의식해야 하는 만큼 스스로 이번 조치를 철회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포석도 엿보인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이 연일 일본 납품기업을 찾아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대응이 뒤처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한일 문제가 터지니까 애꿎은 기업 관계자만 불러들이며 기업과 소통한다고 하는데 지금 정부가 만나야 할 쪽은 일본 관계자와 당사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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