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연둣빛 물감 쏟은 듯…물빛도 풀빛도 신록 일색일세

강경록 기자I 2019.05.03 05:00:00

경남 남해로 떠나는 신록여행

경남 남해 갈곡저수지의 반영. 연둣빛 신록이 우거진 숲들이 저수지 물 위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남해=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피고 지고 날리는 희고 붉고 노란 것들만 꽃일까. 이맘때 산과 들판은 다 꽃밭이다. 연둣빛 뭉게구름으로 뭉실뭉실 피어나 천지사방으로 번져가는 여린 새순들의 자태가 온통 꽃답다. 수백 가지 나무들이 수십 가지 빛깔로 산을 덮어, 오만 가지의 봄 풍경을 그려낸다. 신록의 구름 더미 사이로 뻗어 오른 산길 따라 기암괴석 널린 바윗길을 돌아, 연초록 그늘 드리운 절집 들머리 숲길로 접어들고 싶어지는 때다. 경남 남해 금산이 지금 그런 봄빛에 감싸여 있다. 절집 품은 산자락엔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했고, 저수지를 품은 산자락은 연둣빛 치마를 둘러 입었다. 봄빛 가득한 남해로 떠난다.

남해 금산 상사암에서 바라본 남해 앞바다와 상주해수욕장


◇ 비단을 두른 산 ‘금산’에 올라 남해를 굽어보다

남해 금산 상사암에서 바라본 금산의 신록과 남해 앞바다.
남해군은 섬이다. 남해도와 창선도의 두 섬을 비롯해 유인도 3개와 무인도 65개로 이뤄졌다. 마치 나비가 활짝 날개를 편 모양새다. 왼쪽 날개가 남해도라면 오른쪽 날개는 바로 창선도다. 왼쪽 날개 남해도의 한복판에 솟아있는 산이 바로 금산(錦山)이다. 비단(錦)을 이름으로 삼았으되 그 이름처럼 부드럽지는 않다. 그 대신 기기묘묘한 암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절경을 빚어낸다. 애초에 금산은 보광(普光)이라 불렸다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금산으로 이름을 바꿔 붙였다.

연유는 이렇다. 보광산에 들러 조선 개국을 열망하며 기도를 하던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이루면 비단으로 산을 감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산 하나를 어찌 다 비단으로 감을 수 있었을까. 조선 개국 후 이성계는 산에 비단을 두르는 대신 ‘비단 금(錦)’자를 이름으로 삼는 편법으로 공약을 지켰다. 비단의 본질적 의미를 부드러움이 아닌 화려함 쪽에 둔다면 금산이란 이름은 썩 잘 어울리는 것이다.

금산 정상 턱밑쯤에는 암자 보리암이 있다. 보리암이란 이름도 이성계가 붙인 것이라지만 일찍이 암자는 신라시대부터 해수관음도량으로 이름 높던 절집이었다. 줄잡아 15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저편에서부터 보리암이 지금의 명성에 못지않을 만큼 성지 중의 성지로 꼽혔던 것은 단연코 금산의 치솟은 암봉과 그 암봉이 뿜어내는 기운 때문이었을 터다. 지금이야 보리암의 어깨까지 차로 오를 수 있는 길을 새로 내고, 법당도 새로 지어 말끔하게 단장했지만, 암봉 아래 매달린 암자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광이야 어찌 달라졌겠는가.

남해 금산 상사엄에서 바라본 보리암
금산을 찾은 이들은 대개 보리암만 들렀다가 내려가곤 하지만, 보리암 종루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비로소 금산의 웅장한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금산에는 모두 38경(景)이 있다. 하나하나 헤아릴 필요는 없다. 숫자를 매겨본들 곧 그것이 쓸모없는 일이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풍광이 빼어나니 구태여 거기에 순서를 매길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그 암봉들의 형상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보리암 뒤쪽의 절하는 모양을 한 바위 형리암이며, 고승 대덕들이 앉아서 불법을 닦았다는 좌선대, 바위 모양이 화엄(華嚴)이란 한자의 모습을 닮았다는 화엄봉…. 그 중 빼어난 것이 바로 보리암에서 이어진 능선의 서남쪽 끝자락에 솟아있는 상사암이다. 금산을 통틀어 가장 웅장하고 큰 암봉인 상사암에는 조선 숙종때 전남 여수 사람이 남해로 이주해왔다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상사암에 서면 270도 전망이 펼쳐진다.

경남 남해 갈곡저수지의 반영. 연둣빛 신록이 우거진 숲과 저수지 관리소가 잔잔한 저수지 위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 봄빛 가득한 남해에서 심신을 위로받다

독일마을 앞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연둣빛 신록으로 물들었다.
금산을 둘러싼 바다와 작은 마을에도 봄빛은 가득하다. 물미해안도로는 물건리와 미조리를 잇는 해안도로다. 미조항에서 싱싱한 회 한접시를 먹고 출발해 꾸불꾸불한 해안도로의 경치를 만끽하면 ‘이런 곳도 있구나’라는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 있다. 초전~항도~가인포~노구~대지포~은점~물건으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지나는 마을마다 빼어난 경치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내항도와 외항도의 쌍둥이 섬을 가진 항도마을에 있는 전망대는 데이트코스로도 유명하다. 전망대 앞으로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는 물론 가까이에 마안도·콩섬·팥섬 등 남해의 온갖 섬들이 펼쳐진다.

이 길 끝에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150호다. 원래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고기를 모이게 하기 위해 만든 인공림이다. 길이는 1.5㎞, 너비는 30m에 이른다. 연둣빛에 물든 방조어부림은 이미 봄빛이 완연하다. 팽나무·상수리나무·느티나무·이팝나무·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무려 300살이 넘은 40여 가지의 수종들이 새순이 돋아 연둣빛 숲을 이루고 있다.

국립편백자연휴양림의 편백숲
물건리 마을 뒤편에는 독일마을이 있다. 50여년 전 독일로 건너간 광부와 간호사에게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정부가 조성한 마을이다. 건축방식에서부터 생활여건을 독일식으로 꾸며 이국적인 풍경을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속속 들어서며 소위 ‘인싸’ 명소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노구에서 대지포까지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도 환상적이다. 아홉 등 아홉 굽이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고개를 넘어설 때마다 펼쳐지는 풍경에 입이 쩍 벌어지고도 남는다.

금산 동북쪽 자락에 자리한 삼동면의 편백 자연휴양림은 전체 207㏊(62만평) 중 절반이 편백이다. 섬마을 남해에 편백나무가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1960년대. 수령 40년이 넘은 편백이 빼곡히 들어선 이곳에는 알싸한 나무향이 가득하다. 비오는 날이면 그 나무향이 짙어진다. 편백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피톤치드가 많아 삼림욕에 좋다. 그림엽서에 등장하는 ‘숲속의 집’을 연상시키는 통나무 집 등 숙박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사철 푸르지만 봄이 무르익으며 이곳의 편백은 한결 더 산뜻한 녹색을 띠기 시작했다.

독일마을 앞 물거마을 전경.


◇여행메모

△가는길=대전통영선을 타고 진주갈림목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 방면으로 갈아타서 하동나들목에서 내려 좌회전해 19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이 가장 편하다. 하동나들목에서 11㎞만 가면 남해대교다. 진교나들목에서 내려 1002번 지방도를 따라가도 남해대교에 이를 수 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출발한다면 대전∼통영고속도로의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어 사천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삼천포 방면으로 달리다 창선대교를 건넌다.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여수공항과 사천공항에서는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잠잘곳= 남해의 숙소로는 펜션이나 리조트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아난티 남해’가 최고로 꼽힌다. 150여개 객실과 18홀 골프코스 야외 수영장, 스파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특히 지난해 8월 오픈한 이터널 저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미식을 혼합했다. 총 350평 규모에 두 개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레스토랑과 식료품 판매대가 있다. 평소 쉽게 접하기 힘든 식료품과 남해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2층에는 총 8000여권의 책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섹션에는 40여 개의 브랜드 아이템들이 모여있다. 여기에 아이들과 책과 함께 휴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키즈 섹션을 별도로 갖추고 있다.

경남 남해 갈곡저수지의 반영. 연둣빛 신록이 우거진 숲들이 저수지 물 위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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