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비 대출 규제에 재건축 차질.. ‘공급난→집값 불안’ 부메랑 맞나

박민 기자I 2018.12.05 04:10:00

이주 승인 내주고 이주비 대출 막아
후속 사업절차 모조리 중단될 판
올해 재건축 줄고 주택 인·허가 급감
2~3년 뒤 공급물량 부족 우려 커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경. 그래픽=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박민 경계영 기자] 정부의 재건축 이주비 대출 규제가 향후 2~3년 뒤 서울의 ‘공급 부족론’의 새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의 새 아파트 주요 공급원으로 꼽히는 재건축 사업장마다 이주비 대출이 막히면서 후속 절차가 지연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정부의 연이은 주택시장 옥죄기에 올해 서울의 주택 인·허가 물량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확 쪼그라들어 공급 부족과 그에 따른 집값 불안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책임연구원은 “지난 2~3년간 분양시장 호황 덕분에 당장 내년과 후년까지는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4만여 가구에 달해 공급 부족 체감도가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2021년부터는 재건축 족쇄 후폭풍으로 공급 부족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비 대출 옥죄자 재건축 후속 절차 지연 속출

그래픽= 이동훈 기자
업계에 따르면 9·13 부동산 대책 이후 관리처분계획(착공 전 최종 재건축 계획안) 인가를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예정인 재건축 단지마다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가 이주비 대출도 주택 구입 목적의 대출로 간주해 두 채 이상을 보유한 조합원은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전과 달리 건물 등 실체가 없는 입주권·분양권도 주택으로 간주하기로 함에 따라 ‘1+1 재건축’ 방식을 통해 기존 한 채에서 입주권 두 채로 받는 1주택자도 이주비를 한 푼도 대출받을 수 없게 됐다.

이주비 대출은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이 공사 기간 동안 다른 집에 세들어 살기 위해 필요한 전·월세 자금 등을 지원하는 집단대출이다. 일반적으로 조합 주선 아래 조합원 개개인이 아파트 대지지분 등을 담보로 은행에서 집단대출받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 같은 이주비 대출이 막히면 ‘이주 및 철거→분양 및 착공→준공 및 입주’ 등의 후속 절차가 모조리 멈추게 된다. 사실상 신규 주택 공급이 막히게 되는 셈이다.

9·13 대책 이후인 지난 10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송파구 신천동 진주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자금 계획이 틀어져 내년 초 예정한 이주 시기가 마냥 늦춰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기존 1507가구를 허물고 2636가구로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반성용 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은 “전체 1507가구 가운데 약 40% 정도는 전·월세 가구”라며 “이들 가구 집주인의 절반 이상이 2주택 이상 소유자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이주비 대출이 막히면 자칫 사업마저 중단될 극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1+1 재건축 사업장이 많은 서초구에서도 이주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 단지가 적지 않다. 기존 2120가구에서 5400여 가구의 초대형 단지로 재건축할 예정인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조합 관계자는 “전체 조합원 2300여명 중에서 1+1 재건축을 택한 조합원이 1300명으로 절반 정도”라면서 “이제 와서 1+1 재건축을 취소하고 주택형이나 총 가구수 등의 설계 변경을 하려면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단지는 애초 12월에 관리처분 인가를 받으면 내년 6월께 이주할 계획이었으나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3686가구로 탈바꿈하는 잠원동 신반포(한신)4지구 재건축조합은 “행정 당국이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통해 이주 승인을 내주고선, 정작 이주비 대출을 막아 이주를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내년 초 관리처분계획 제출을 계획하고 있는 송파구 문정동 136 단독주택 재건축조합은 1+1 분양 신청 대상을 하향 조정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문정 136 조합 관계자는 “1+1로 분양 신청하려던 조합원이 사전 조사에서는 100가구 정도에 달했는데 이달 초 20가구로 확 줄었다”며 “일부 조합원을 탈퇴하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사업 추진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주가 미뤄지면 강남권 새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어 주택 수급(수요와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기고, 이는 결국 집값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주택 인·허가 ‘반토막’…“2~3년 뒤 집값 불안”

재건축 사업 추진 난항에 더해 주택 공급 사전지표인 주택 인허가 물량도 올해 들어 급감해 향후 공급 부족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누적 기준 서울 주택 인허가 물량은 4만8066채로 지난해 동기(8만9283채)보다 46.2% 줄었다. 이 추세라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만8417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통상 인허가를 받은 뒤 입주까지 아파트는 3년,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은 1년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인허가 감소는 2~3년 뒤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 계획을 이달 중순쯤 발표할 계획이지만 서울 신축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올해 주택 인허가 급감은 몇 년 뒤 공급 부족을 불러오고, 이는 수급 불균형에 따른 집값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며 “강남이나 도심권 주택으로 진입하려는 수요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고 도심 역세권 개발사업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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