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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직장인 A씨는 지난 10월 처음 가상화폐(암호화폐) 매매를 시작했다. 재미삼아 투자한 50만원이 하루 사이에 100만원 가까이 오른 것을 본 A씨는 투자금액을 늘려 3000만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그때부터 A씨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직장에서도 계속 차트를 들여다보는 게 일이었으며 당연히 업무성과는 떨어졌다. 혹시나 화폐 가격이 급락할까 무서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에도 몇 번이나 깨기 일쑤였다. 22일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을 했을 때 A씨는 1000만원 가까운 돈을 잃었다. A씨는 가상화폐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잃은 돈을 복구하기 위해 결혼 자금까지 털어 넣었다. 그럴수록 불안감은 더 커졌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는 파혼했다.
B씨는 올해 초 사둔 가상화폐가 약 10개월 만에 2000% 이상 급등하면서 1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거뒀다. 그는 가상화폐를 본업으로 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뒀다. 빨리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위험성이 큰 단타(초나 분 단위로 매매하는 방법) 투자에 집중했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급등락 예측이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폭락장이 이어지면서 그는 단 며칠 만에 수익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B씨는 오늘은 분명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기대하며 가상화폐 차트를 들여다 본다.
대학생 C씨는 스스로를 ‘가상화폐 좀비’라고 말한다. 가상화폐에 빠진 그는 얼마 전 전세 보증금까지 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가상화폐 동아리에서 얻은 ‘특급정보’ 때문이다. 무조건 급등한다는 믿음에 가상화폐 하나에 3200만원이라는 큰 돈을 쏟아 부었지만, 예상과 달리 가상화폐는 급등하지 않고 오히려 하락 후 횡보를 거듭했다. 원래 살던 곳보다 학교에서 더 먼 곳에 위치한 월세 하숙집에 살고있는 C씨는 학교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차트만 보고 있다.
가상화폐 중독은 일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저 망쳐버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중독이라고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정님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예방교육과 과장은 “도박과 달리 가상화폐는 합법적인 투자라는 면에서 중독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그만큼 중독이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진행된 경우가 많아 치료도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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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이미 중독에 빠졌다면,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본인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이 상담 치료를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아울러 중독치료를 받을 때 가족이 함께 받아 문제를 공유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를 대신할 즐길거리를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가상화폐를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내려 놓고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선택해야 한다.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든지 요리, 장난감 조립 등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일 수록 그 효과는 높다. 또한 혼자 하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하는 활동이 좋은데 이때는 어울리는 사람들이 가상화폐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중독이 심한 경우에는 항갈망제 등 약물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한국도박중독센터에서는 가상화폐로 인해 파산에 이른 경우에는 정신상담 외에 재정·법률상담까지 치료과정으로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임 과장은 “중독은 만성질환이다. 충분한 치료를 통해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눈 앞의 돈보다 건강한 삶과 행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중독에 걸린 이들이 하루빨리 치료를 받길 권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