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혼선을 빚었을까. ‘대통령 발언 때문에 입장이 바뀌었다’는 풀이도 있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산업부가 너무 안이했다”고 지적했다. ‘누진제 리스크’는 예고돼 있었는데 최근 들어 정책적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몇 년 전만 해도 산업부는 누진제 개편 입장이었다. 윤상직 전 장관(현 새누리당 의원) 시절인 2014년 대통령 업무보고에는 ‘산업·에너지 분야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로 “주택용 누진제 개선” 방침이 포함돼 있었다. 이미 정부도 현행 누진제가 ‘비정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업무보고에는 누진제 내용이 사라졌다. 지난 1월 취임한 기획재정부 출신 주 장관의 시선은 다른 곳에 꽂혀 있었다. 이른바 ‘전력분야 10대 프로젝트’다. 이는 한전 등 전력공기업이 작년보다 3.9조원 늘어난 6.4조원을 신산업에 투자하는 내용이다. 남는 전기를 사고 파는 프로슈머(prosumer) 정책은 누진제를 기반으로 짰다. 누진제를 대폭 개편하고 전기료가 인하될수록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이 백지화되는 구조인 셈이다.
장관이 질주하는데 내부 ‘경고음’은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장관이 천명한 신상필벌·성과주의 방침은 “장관에게 찍히면 물 먹는다”로 인식됐다. 19대 국회에서 산업부의 누진제 개편안이 부자감세를 우려한 야당 반발로 무산된 경험, 2011년 9·15 순환대정전 사태는 산업부 공무원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어차피 정치권이 추궁할 텐데 우리가 먼저 총대 메고 갈 수 없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어느새 자리 잡았다. 이 결과 누진제에 대한 원성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 장관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든 실정이다. 누진제 관련 사과나 공식입장 표명도 없었다. 향후 관련 현장방문 일정도 알려진 게 없다. 전문가들은 “8월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향후 에너지정책 전반의 신뢰를 잃어 추진동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무부처는 발뺌하고 국회가 포퓰리즘 식 ‘묻지마 개편’을 할 경우 후유증이 생길 우려도 크다.
김 교수는 “당장 국민과 만나 소통하시라”고 주문한다. 폭염에 고생하는 시민을 만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고 내부 실무진들과 이제라도 책임 있게 정책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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