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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휘슬블로어' 스노든 감상법

김민구 기자I 2013.07.10 06:02:01
미국의 거대 담배회사 브라운&윌리엄슨에 근무하는 제프리 위건드 박사. 그는 회사가 인체에 치명적인 암모니아 화합물을 담배에 넣는 것을 알고 이를 저지하려다 해고당한다. 위건드 박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CBS방송 PD 로웰 버그만을 찾아가 회사가 10여 년 간 담배에 대한 중독성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그러나 CBS 경영진은 PD에게 압력을 가해 폭로 인터뷰를 방송하지 못하게 한다. 위건드 박사는 심지어 회사로부터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

담배회사와 폭로자와의 대립관계를 그린 영화 ‘인사이더(Insider)’ 얘기다. 영화로 선보였지만 사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최근 국제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前)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은 대(對)테러·사이버 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보국(NSA)이 전자감시프로그램 ‘프리즘(PRISM)’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민간인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왔다고 폭로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38개국 주미 대사관과 유엔대표부도 감청 대상이었다니 충격적이다.

CIA 직원이라는 막강한 영향력과 연봉 12만달러(약 1억3000만원)를 포기하고 ‘진실 밝히기’에 나선 스노든은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내부고발자)’의 대표적인 예다.

휘슬블로어는 부정부패와 불법에 맞서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흔히 공익신고자라 불린다. 그러나 휘슬블로어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위협 등 온갖 법적·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 직업마저 포기해야 한다. 결국 휘슬블로어는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 때문에 세계 50개국에서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만들어 ‘용기가 있는 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할까.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 건강이나 환경, 안전 등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공익침해행위’를 적극 신고하게 하고 이를 알리는 신고자를 철저하게 보호해주기 위해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공익신고가 지난해 1153건 접수됐으며 올해 6월 현재 900여 건을 넘어서는 등 국민적 호응이 뜨겁다. 그러나 비리 제보 후 신분 보장을 요청한 사례 역시 2010년 9건, 2001년 11건, 2012년 19건, 올해 5월말 현재 13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이는 공익신고에 따른 신변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많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이론을 통해 ‘신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신뢰가 형성되려면 우선 ‘사회적 안전망’이 확보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불안함을 느끼면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갖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회가 건전하고 투명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들이 두려움 없이 부정부패를 고발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이 불량부품 납품과 뇌물수수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

특정 인맥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른바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이 붙어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스노든과 같은 내부고발자가 있었다면 지금와 같은 불명예를 얻지 않았을 것이다.

내부고발자가 없는 정체된 사회, 내부고발자를 ‘고자질쟁이’로 매도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오히려 사회의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양심의 호루라기’가 더욱 우렁차게 울려 퍼지도록 독려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원래 시끄러운 것이다.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패러다임이 구축되어야 선진민주국가로 향할 수 있다.

김민구

gentle@/글로벌마켓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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