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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등이 파인 붉은색 원피스에 같은 색 구두. 여기에 새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모습이 강렬하다. 손톱까지 붉게 칠한 그의 손 끝에서는 관능이 묻어난다. 주인공은 배우 양미경(52). “품위 유지하는 데 쓴 것만 해도 파산지경이다.” 무대 위에 선 그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낯설다. 눈빛에선 탐욕마저 느껴진다. 1983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 후 첫 연극 도전. 시작부터 파격이다. 무대 위 인자한 ‘한상궁’은 없다.
양미경은 ‘2013 갈매기, 체홉 그 이후 쇼팽을 만나다’(강태식 연출·이하 ‘2013 갈매기’)에서 은퇴한 여배우 아르카지나를 연기한다. 소설가 정부를 둔 그는 엇갈린 사랑과 욕망에 꿈틀한다. 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비극을 감내해는 여인이기도 하다. “배우이자 어머니지만 무엇보다 여자로서의 욕망이 잘 드러나 정말 매력적이다.” 양미경의 목소리에 살짝 흥분이 얹혀졌다. 하지만 처음 해본 캐릭터라 조심스럽기도 하다. “내가 배우인데 배우 역할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하하하”
배우 30년차다. 왜 이제서야 연극일까. 그것도 어렵기로 소문난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로 무대 걸음마다. ‘2013 갈매기’는 아르카지나, 소설가 트리고린, 아르카지나의 아들 코스차, 배우 지망생 니나가 겪는 생의 우울과 허무를 그린 작품이다. 1898년 모스크바예술극단이 올린 ‘갈매기’ 원본을 최초로 번역해 이번에 새롭게 무대에 올렸다. 드라마 ‘대장금’ ‘해를 품은 달’ 등 대중적인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던 중년배우의 낯선 행보다. 이유를 물었더니 뜻밖에 답은 간단했다. “대학서 강의를 준비하다가 본격적으로 러시아 희곡을 접하고 애정을 키워오다 이제야 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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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 않았나고?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처음에는 되레 설렜다. 그러다 막상 무대에 서니 그때 두렵더라.” 쉽지 않은 작업이다. 카메라 프레임 속 연기에 익숙한 그에게 무대 위 몸짓은 낯설다. 대사를 전하는 발성방식이 달라 시행착오도 겪었다. 대사 전달을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려면 감정선이 흔들렸다. 양미경은 “아직 배우고 있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의 입에서 ‘신인’이란 말이 세 번이나 나왔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소리다.
공연 전 닫힌 극장 문을 맨 처음 밀고 들어가는 이도 바로 이 ‘중견 신인’이다. 그는 다시 연기를 배우는 ‘학생’이 됐다. 연기 연습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동선과 대사 톤을 체크하고, 자신의 공연이 없는 날에도 극장을 찾는다. 극의 흐름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수정하고 집에서 복습하고… 연습의 반복이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다”고 했다. “무대 위에 서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새롭게 날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양미경은 공연 3주차를 맞아 연기에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또 한번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 공연. ‘2013 갈매기’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한 후 재정비를 거쳐 9월 22일 러시아 타간록 체호프극장에 오른다. “체호프의 고향에서 하는 공연이다. 정말 기대되고 벌써 설렌다.” 그의 환한 미소가 어두운 극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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