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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감몰아주기 해소, 다른 기업들도 동참을

논설 위원I 2013.04.19 07:00:00
현대자동차그룹이 계열사에 몰아줬던 6000억원 규모의 일감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거나 경쟁입찰에 붙이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경쟁입찰의 흉내만 내고 실제로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막기 위해 계열사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경쟁입찰 심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정치권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호응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이 독식하던 일감이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47개 대기업 집단의 광고·SI·물류·건설 분야 내부 거래규모는 27조원이다. 현대차처럼 절반만 풀어도 대략 13조원 규모의 사업이 중소기업에 개방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일감몰아주기는 보통 대기업 총수 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를 대상으로 이뤄지며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초기에 규모가 작더라도 그룹 전체의 일감이 몰리면 해당 기업이 급성장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같은 사업을 하는 경쟁업체는 원천적으로 기회를 박탈당해 불공정거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현대차그룹 계열의 물류업체 현대글로비스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2001년 20억원을 출자해 만들었으나 현재 시가총액 6조원이 넘는 회사가 됐다. 또 정 회장 일가 지분인 100%인 이노션은 설립 6년만에 국내 매출만 3400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2위로 부상했는데 절반이 현대·기아차 광고물량이었다.

다른 그룹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건희 회장 일가 지분이 46%인 삼성에버랜드도 내부거래 비중이 44.5%이나 되고 최태원 SK회장일가 지분이 48.5%나 되는 SKC&C도 내부거래 비중이 65.1%에 달한다.

대기업들이 기술 유출 등의 우려가 있다며 일괄적인 규제에 난색부터 표명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우선 대기업들이 부당한 사익(私益)을 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할 수 있는 과징금 부과나 과세 등 강성 발언이 쏟아지는 것도 그동안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점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대기업 스스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진정성을 보여준 다음 현실적인 고충을 해소하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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