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고(故)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상속세 납부를 위해 총 4조 781억원의 주식담보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이 선대 회장의 2020년 별세 후 12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기존 대출 외에 최근 2조원이 넘는 추가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세 사람을 포함한 유족들은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상속세를 분할 납부 중이며 향후 3년간 추가 납부해야 할 세금이 6조원 이상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세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부(富)의 지나친 쏠림을 막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소식은 가혹하기로 악명높은 한국의 상속세 체계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상속세 최고 세율은 과세 표준이 30억원이 넘을 경우 50%이며 최대 주주 할증 과세까지 포함하면 60%로 높아진다. 미국·영국(40%) 등도 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낮다. 이 정도면 상속세를 내고 난 후 유족들이 온전히 기업을 이어받고 ‘100년 기업’으로 키우는 걸 기대하는 게 불가능하다. 자칫 빚더미만 남을 수도 있다.
징벌적 수준의 상속세는 삼성에만 해당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2월 별세한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족은 지주회사 NXC의 지분 29.3%를 물납했다. 이로 인해 평가가치 4조 7000억원의 주식을 세금으로 거둔 정부는 최근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2대 주주가 됐다. 유족이 현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선택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지만 “상속 두 세 번만 하면 모든 기업이 국영 회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과도한 상속세는 세금 마련을 염두에 둔 무리한 배당과 주식 매각,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등 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2000년 이후 상속세 과세 표준과 세율을 23년째 고집 중인 정부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천문학적 수준의 세금 납부를 위해 상속인들이 산더미 같은 부채를 지게 되고, 가업까지 포기하는 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가. 정부의 반성과 고민, 그리고 대대적인 개편 작업이 속히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