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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박은 제법 많은 빚을 졌다. 도박이 문제였다. 부모는 1993년 박에게 유학생활에 쓸 차를 사라고 1만8000달러를 줬다. 당시로써 상당한 거액이었다. 박은 이 돈을 도박으로 잃었다. 탕진하고 돈이 모자라자 주변에서 빌리고 사채도 끌어다 썼다. 감당하지 못할 처지가 되자 부모에게 대신 갚아달라고 했다. 부모는 장남의 빚을 외면했다.
부모의 재산이 탐난 박은 살해하고 상속받기로 결심했다. 그러고는 그날 부모를 흉기로 살해했다. 범행을 은폐하려고 집에 불을 질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는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열었다가 불길을 보고 혼자 도망했다”고 진술했다. 경찰도 박의 진술을 믿었다. 부모는 묘사하기가 거북할 만큼 처참할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가족이 가족을 상대로 한 범죄로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애초 박은 완전 범죄를 노렸다. 범행 당시 일부러 알몸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샤워로 혈흔을 쉽게 지우려고 그런 것이다. 부모를 안치한 영안실에서 거짓으로 실신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관에게 보인 쇼였다.
범행 이후 보인 스스럼없는 행동에 발목이 잡혔다. 서둘러 부모의 재산을 처분하려는 태도와 미국 지인과 태연하게 전화통화하는 데에서 부모를 잃은 자식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박의 종아리에는 사람 잇자국이 나 있었다. 훗날 다리에 난 잇자국은 살해 과정에서 박의 모친이 아들을 문 흔적으로 밝혀졌다.
이점을 수상히 여긴 친척이 박을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박은 범행 1주일 만에 경찰에 연행됐다. 추궁당하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범행 동기는 “부모가 없으면 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당일 집에는 열두 살 이종사촌 동생이 잠들어 있었다. 박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질러서 안타깝게도 이종사촌도 희생됐다.
박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친구에게 공범 누명을 씌워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외려 “누군가 내게 누명을 씌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권변호사 황산성씨가 박의 변호를 자처했지만 나중에 포기할 정도였다. 법원은 박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95년 8월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확정됐다.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명단에 박의 이름은 빠졌다.
형이 확정된 이후에도 박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30년 넘게 사형수를 주로 상담해온 교정본부 교화위원 양순자씨는 회고록에서 박을 언급하며 ‘더 상담할 수 없어 포기했다’고 썼다.
재산은 박의 남동생에게로 넘어갔다. 민법은 ‘고의로 부모를 살해한 자’를 상속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남동생은 사건 당시 학업을 이유로 집을 비워서 화를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