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18)군은 최근 학교에 가정학습을 신청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총 20일의 가정학습을 신청한 이군은 방학기간 동안 다니던 독서실에서 수능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코로나 재유행 속 전국 학교가 개학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86일 앞둔 고3 학생과 학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감염에 따른 학습 시간 손실과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특히 자퇴 등 학업을 그만두려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학업중단숙려제를 악용, 등교를 피하는 학생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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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1만1960개교 중 1만334개교(86.4%)가 이번주(8월 4주차)에 개학을 맞이 한다. 2학기 시작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코로나 확산세는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0시 기준 코로나 일일 신규 확진자는 15만258명에 달했다. 1주 전인 지난 16일보다 6만6130명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18세 이하 확진자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주 전 18세 이하 확진자 비중은 16%였지만 지난 22일 기준 23.3%까지 늘었다.
교육부과 시도교육청은 코로나 확산세에도 불구, 등교수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2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정상등교·대면수업 원칙을 재확인했으며, 서울시교육청도 개학 전후 3주간 집중방역점검기간을 운영한 뒤 정상등교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수능을 86일 앞둔 고3 수험생·학부모들은 코로나 확진으로 입시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18)양은 “지난해 코로나에 걸렸을 때 후유증이 심해서 한 달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수능 앞두고 코로나에 걸리면 큰일인데 학교를 나가야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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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둔 일부 고3 학생·학부모들은 가정학습이 가능한 교외체험학습제를 이용해 등교를 피하고 있었다. 교육부는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2020년 5월 교외체험학습에 가정학습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학교장의 승인을 받으면 학칙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가정학습으로 등교수업을 대체할 수 있다. 서울 노원에서 고3 수험생 아들을 키우는 정모(55)씨는 “학교에서 최대 20일까지 가정학습이 가능해 4주간은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고 독서실에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학업중단숙려제를 악용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학업중단숙려제는 자퇴 등 학업중단 의사를 밝힌 학생들을 위해 2013년 도입했다. 학업을 중단하려는 학생에게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취지에서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업중단숙려제를 신청할 경우 학업중단 위기 학생에게 최소 1주에서 최대 7주의 숙려 기회를 부여한다. 최대 35일까지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출석이 인정되는 것이다. 숙려제를 신청한 학생은 주1회 지정된 교사와 상담만 진행하면 된다.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는 박주형(가명) 씨는 “평소 착실하게 잘 지내던 학생이 갑자기 자퇴 의사를 밝히고 학업중단숙려제를 이용했다”며 “이 학생의 경우 숙려제 이후 시험을 치고 가정학습까지 쓴다면 사실상 수능 때까지 학교에 안 나와도 된다”고 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학업중단숙려제를 악용하는 방법 등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해당 제도를 이용해 본 한 누리꾼은 “주1회 학교에 나와 상담교사와 상담만 하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도 않는 등 문제가 없다”는 후기를 남겼다.
교육청은 교사와 학생 간의 상담시간을 늘리는 등 악용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가정학습·학업중단숙려제의 경우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제도”라며 “이를 악용하는 학생들을 막아낼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일선 교사들도 학생들이 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