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55%화상 이찬호 "아픈 기억 나눔으로 치료해요"

이윤정 기자I 2019.02.11 06:00:00

군 복무중 K-9자주포 폭발사고로 화상
오랫동안 꿈꿔왔던 배우의 꿈 잃어
책 수익금 화상 환자 등에 기부
"받은 도움 이제는 내가 나눠주려"

K-9자주포 폭발 사고로 전신에 55% 화상을 입은 이찬호 씨(사진=새잎).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펑!” 엄청난 화력이었다. 문제의 3번째 사격에서 비정상적 격발로 화약이 폭발했다. 그 순간 죽음을 직면했다. 모든 문이 잠겨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순간의 정적과 소름, 고요.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전쟁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펼쳐졌다. 사격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지문이 녹아내릴만큼 뜨거운 쇳덩이를 만지며 두 손 두 발로 기어 나왔다.

2017년 8월 18일 강원도 철원에서 K-9 자주포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3명의 사망자와 4명의 부상자. 이날의 사고는 이찬호(24) 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전신에 55% 화상을 입은 이 씨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배우의 꿈마저 접어야했다.

사고 후 수도 없이 죽음을 생각했던 이 씨는 아픔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포토 에세이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새잎)에 담았다. 국민의 관심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30만 명을 달성했으나 보상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싸움 중이다. 이 씨는 “힘들었던 일을 기억하고 적어야 했던 게 괴로웠다”며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이제는 내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지만

화상 치료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매일 같이 드레싱을 하는데 온갖 살점들이 뜯기고, 긁어내고를 반복했다. 상처 부위를 수세미로 미는 느낌이었다. 나중엔 하얀 가운을 입은 치료사들이 저승사자처럼 보였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두렵고 아프고 괴로웠다. 한마디 말보다 사진 한장이 주는 효과가 더 클 것 같아 사진촬영을 했다. 그때 일을 계속 느리게 반복해서 기억하느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글로 적었다.”

힘겨운 5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더 많은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이 씨는 “병원에서는 2~3년 두고 봐야 한다고 하더라”며 “피부들이 자라면 그 피부를 잘라 붙여야 해서 회복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이 정도면 잘생긴 괴물 아닌가?”

이 씨는 흉터들로 인해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어린애들이 장난친다. “으악! 빨간 괴물이다!” 아이들의 눈은 정확했다. 하지만 내 발상 또한 정확했다. 이 정도면 괴물치고 잘생긴 거 아닌가?(‘빨간 괴물’ 중)

“이제는 뭘 해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과연 이 몸으로 사회에 나갈 수 있을까 생각도 많이 했다. 땀구멍이 없어서 땀배출이 안되고 체온조절도 안되는 내가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평생 배우만 꿈꾸며 달려왔는데 이제는 보통 사람으로서의 삶도 힘들다는 사실이 힘겹게 다가온다.”

용기를 내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건 주변에서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눠주고 싶은 생각에서다. 지난달에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연탄 1000장을 기부하는 나눔 봉사활동을 했다. 책으로 얻은 수익은 모두 화상 환자나 필요한 곳에 기부할 예정이다.

“목함지뢰사고의 피해자인 하재헌 중사가 의족을 끼고 연탄봉사활동에 함께했다. 나와 같은 일들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군대를 반드시 가야만 하는 대한민국에선 내 가족 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배우라는 꿈도 마음 한 켠에서 꺼내줄 수 없는 곳에 있을 뿐이지 완전히 접은 건 아니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K-9자주포 폭발 사고로 전신에 55% 화상을 입은 이찬호 씨(사진=새잎).
K-9자주포 폭발 사고로 전신에 55% 화상을 입은 이찬호 씨(사진=새잎).
폭발 사고를 당하기 전 이찬호 씨의 모습(사진=새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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