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실시하는 개인워크아웃과 프리워크아웃은 법원의 개인회생, 개인파산과 같은 채무조정 제도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금융당국이 내세운 ‘포용적 금융’ 등 정책 영향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는 늘어가는데 가계 자산은 하락하는 이른바 ‘부채 디플레이션 시대’에 한계 가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정부가 지난해 소액장기연체자(1000만원 이하 채무를 10년 이상 연체)의 채무를 100%를 탕감하는 정책을 내놓은 데 이어 또다시 부채 감면 정책을 확대하면서 ‘버티면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확산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쏟아지는 빚 탕감 정책…도덕적 해이 우려
2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법원에 가기 전에 채무를 조정하려는 신용회복 지원자도 역대 최고를 향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올해 5월까지 접수된 워크아웃 신청은 4만5092건이다. 지난해 6월말까지 5만3276명이 신청했는데 이대로라면 지난해 10만3277건을 뛰어넘어 다시금 9년래 최대 지원자 수를 갈아치울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10년간(2008~2017년) 빚을 일부라도 탕감받은 채무자 수는 205만명으로 추산된다. 법원 개인파산·회생 인용 건수,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 확정 건수를 모두 합친 수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채무조정 때 채무금액에 따라 기계적으로 감면율을 산정하지 말고 개개인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는 유연한 제도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상환능력이 거의 없는 소액 채무자와 취업활동을 해야 하는 청년층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중위소득 60% 이하 서민층과 30세 이하 청년층에 대해서는 현재 최대 60%인 원금 감면율이 80% 이상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다섯 달 동안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신청 사건은 7179건을 기록해 작년 같은 기간 6311건보다 13.75%(868건) 증가했다. 법시행을 앞두고 변제기간을 단축 받으려는 신청자가 몰린 탓으로 법원은 분석했다. 작년보다 접수 속도가 빨라서 이대로면 작년 규모(1만5029건)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법 개정을 앞두고 애초 5년 동안 빚을 갚기로 했던 기간을 조정한 사례도 잇달았다. 회생법원이 올해 5월까지 변제기간을 최대 3년으로 줄여달라는 신청을 받아서 허가한 사건은 635건이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올해 들어 개인회생 사건이 증가하고 변제기간 단축 신청이 들어온 것은 법이 바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는 채무탕감을 법제화하는 법안이 제출돼 계류돼 있다. 빚을 갚지 않으려는 금융 소비자가 늘고 있고 제도와 정책은 이들을 지원하는 상황이다.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진 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금융정책 초점이 금융사 건전성 유지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로 옮겨가는 과정”이라며 “다만 금융에서 복지 영역을 어디까지 넓힐지 고민이 필요하고 채무자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정책 고려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진국 면책 정책 보니…
정부가 취약계층 지원에 지나치게 모든 걸 다 할 게 아니라 민간 서민금융 시장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면서 함께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당 못 할 빚을 감면받는 것은 엄연한 채무자의 권리다. 법원과 신용회복위원회가 개인파산·개인회생·개인워크아웃 같은 채무조정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사후관리다. 신복위는 워크아웃 확정자를 대상으로 한차례 신용교육만을 한다. 법원도 개인파산·회생 인가를 내주면서 어떠한 교육·상담·컨설팅도 하지 않는다. 그저 법무사가 제출한 소득·재산 관련 서류만 보고 요건만 되면 통과다. 현재의 빚 부담에서 구제해주는 데 집중할 뿐 미래의 빚 재발을 막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없다.
상당수의 선진국은 빚 면책에 깐깐하다. 독일·네덜란드는 채무자가 사전에 신용상담을 거치고 채무변제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는 사실을 법원에 증명해야 개인파산 신청을 할 수 있다.
한 정책서민금융기관 관계자는 “일괄적인 빚 탕감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해줄지는 의문”이라며 “정교한 사후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책을 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