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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기술 '블록체인' 다이아몬드 지킨다?

오현주 기자I 2018.01.10 00:12:00

지구촌 난제 해결 나선 '스타트업'
도전적 해결법으로 사회가치 창출
혁신'기술' 무기로 시장 경쟁력 ↑
위조봉쇄 블록체인은 보험사기 막아
…………
빅 프라블럼에 도전하는 작은 아이디어
모두를 위한 기술연구모임|312쪽|삼성경제연구소

위조·변조가 원천봉쇄된다고 알려진 블록체인 기술을 다이아몬드산업에 ‘들이댄’ 스타트업 에버렛저. 보험사기나 보석류 절도를 막는 데 ‘딱’이란 발상을 살려, 창업 1년 만에 98만개 이상의 다이아몬드에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장부를 발급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8명이 찾아낸 ‘독특하면서 결이 다른 스타트업’ 중 하나다(이미지=문순용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후 느긋한 시간에 이런 뉴스를 봤다고 치자. ‘미국과 유럽에서 매년 450억달러 규모의 보험사기가 발생한다.’ 따라붙은 기사도 있다. ‘보석류 절도 규모도 연간 1억달러 수준.’ 당장 무슨 생각이 드나. 아마도 “이게 도대체 얼마란 얘기야?”가 아닐까.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환율을 계산하는 귀찮은 과정까지 거쳤다면 살짝 놀랄 수도 있다. 우리 돈으로 48조원이 왔다갔다 하는 보험사기에다가 1066억원에 달하는 보석절도라니. 자, 그러면 다음 ‘액션’은 뭐가 있을까. 누군가 이렇게 물어왔다면 아마 이렇게 받아치지 않았을까. “뭐가 더 있어야 하지? 그냥 그렇다는 얘기 아니야?”

여기서 멈췄다면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저 그런 오후의 심심한 손가락 위로잔치로 마무리됐을 거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후끈 달아오른 사람이 있다는 거다. 지구의 정의가 위협받고 있다는데 나서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사명감에 행동이 빨라진 사람. 대단한 오지랖 정도로 혹은 쓸데없이 한가하다고 할 정도로 무시당하기 딱 좋은 상황에 희한한 기술까지 들이댄 것이다. ‘보험사기’ ‘보석류 절도’에 끌어들인 기술은 바로 ‘블록체인’이다. 요즘 가상화폐 덕분에 덩달아 유명세를 타는 그 블록체인 맞다. 중개기관의 개입 없이도 거래 당사자 간에 안전하게 자산을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

복잡한 건 다 버려두고 핵심만 챙겼을 때, 블록체인의 강점은 보안성과 투명성으로 모인다. 거래정보를 특정 서버에 저장하지 않고 개인 간 네트워크에 분산·저장하는 덕분에 위조·변조가 원천봉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보험사기나 보석류 절도를 막는 데 ‘딱’이겠다, 이런 생각을 누군가가 해낸 것이다. 2015년 영국서 스타트업 에버렛저를 창업한 린 켐프란 여인이다.

켐프가 특히 주목한 것은 다이아몬드산업이다. 이전까지 세계 800억달러 규모의 다이아몬드산업에서 보험회사·보험사기와 관련해 25억달러가 빠져나갔던 상태. 창업 1년 만에 98만개 이상의 다이아몬드에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장부를 발급했다. ‘들이댄 건’ 공급망관리 기술이지만 보험업계에서도 주목하는 회사가 됐다. ‘지대한 효용을 창출할 걸로 기대된다’면서. 유망한 핀테크 스타트업이란 명성까지 챙기게 된 거다. “불투명한 시장에 투명성을 제공한다”는 기치를 휘날리던 켐프의 블록체인 기술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 미술품·전자기기·여타 귀중품 등 시리얼넘버가 있는 모든 자산으로.

여기서 따낼 수 있는 교훈 한 가지는, 비트코인 투자도 좋지만 정작 블록체인 쓸 일은 따로 있다는 것. 누구도 눈여겨보지 못한 세상 바꾸는 일을 하고 있더란 것. 책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다. 지구촌 이웃이 겪는 ‘거대한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엉뚱한’ 스타트업, 또 그들이 진짜로 지구를 지킨 이야기니까.

‘모두를 위한 기술모임’이란 이름으로 뭉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8명이 32가지 사례를 모았다. 어느 날 우연찮게 시작한 사소한 사담이 스타트업으로 번지다가 ‘엉뚱별’에 떨어지게 된 모양이다. ‘독특한 괴짜’ ‘결이 다른’ 스타트업을 찾아보자고. 어젠다 격의 큰 질문도 만들었다.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게 가능한가.’ 좀더 적나라하게 바꿔 말하면 ‘기술로 착한 일을 하며 돈을 벌 수도 있나’다. 책은 이들이 그 질문에 정성스럽게 찾아낸 답안이다.

△기술은 이럴 때 들어가는 것

과학도 발달하고 기술도 첨단화로 가는데 인류의 문제는 어째서 사그라질 줄을 모르나. 저자들은 ‘빅 프라블럼’을 고르는데도 고심했던 거 같다. 글로벌기관이 발표하는 자료를 뒤지고, 각종 지표도 보고, 언론의 설문조사도 살피고. 그렇게 요즘 지구에 사는 인류의 4대 ‘빅 프라블럼’이 걸러졌다. 질병이 생기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환경오염·기후변화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갈수록 불평등해지는 데다가 폭력·범죄가 늘어나는 것.

이 엄청난 사회문제에 얼굴을 대고 선 스타트업 32개의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주목하는 건 분명하다. 하나는 사회적 가치, 다른 하나는 기술. 마치 “기술 들어갑니다” 또는 “기술은 이럴 때 들어가는 것”이라던 어느 광고카피와 비슷한 모양새다.

미국의 스타트업 멤피스미츠는 가축을 ‘기르지 않고 만드는’ 회사다. 이들이 쓰는 기술은 ‘배양육 만들기’. 밀·감자 등에서 세포를 뽑아 진짜 고기와 99% 일치하는 맛을 가진 인공고기를 만들고 있다. OECD 평균 1인당 육류소비가 2014년 연간 63.5㎏을 찍은 뒤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자극을 받은 회사다. 가장 큰 숙제는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 해결점을 빨리 찾는다면 2021년 배양육 치킨을 일반에 시판하는 것이 목표란다.

‘교통사고의 80% 이상은 운전자 부주의나 실수, 운전 미숙에서 비롯된다.’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통사고 방지에 나선 스타트업도 있다. 미국의 브레인포카즈다. 센서나 카메라로 수집한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순환형 신경망’ 기술을 깔고 있다. 차량 내부의 카메라로 운전자의 시선까지 알아채 몇 초 뒤 벌어질 상황을 가늠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3.5초 뒤를 내다보는 예측률이 90.5%에 달한단다.

△지구 지키느라 시장 뒤처지는 일은 없어

온통 착한 얘기다. 그 단단한 바탕 위에 ‘저돌적이지만 순진한’ ‘무모하지만 우직한’ 스토리까지 겹쳐 단순한 성공사례 이상의 재미를 쥐어준다. 특히 돋보이는 미덕은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킨 거다. 편견도 깼다. 패기는 있되 자생력이 없는, 아이디어는 있으나 실행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이미지를 다시 그리게 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 사례로는 단 한 건도 챙기지 못했다는 것. 찾으려 했으나 아무 데도 없었던 건지, 처음부터 신통치 않을 줄 알고 시도조차 안 했던 건지. 만약 뒤엣것이 이유라면 저자들이 전적으로 놓쳤다고 해도 아직은 기댈 부분이 있다. 더 심각한 건 앞의 경우다. 좋은 일을 하지만 비즈니스가 안 되는 스타트업, 비즈니스만 하는 스타트업, 좋은 일만 하는 스타트업, 한국에선 이외에 더는 안 보이더란 얘기일 수 있으니까.

하나만 하는 회사, 한쪽으로만 기운 기업은 이젠 재미가 없다. 인류 최대의 숙제를 해결했더니 사회적 가치를 만들더라, 기술혁신에 매진한다고 시장에서 뒤처지는 건 아니다 등. 책은 지금부턴 두 손에 떡을 쥐어도 괜찮다고 등을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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