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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하느냐 못 하느냐…인간은 두 부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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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7.05.31 00:15:00

젓가락으로 집어낸 인류문화사
중국 전국시대 처음 ''발명''
조리도구→식사도구 변천
주변국 퍼진 경로 짚으며
한중일 3색 젓가락문화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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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Q 애드워드 왕|416쪽|따비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오늘의 퀴즈’부터 풀고 가자. 중국 전국시대 처음 ‘발명’했다. 완벽한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두 개의 막대기다. 손가락을 연장한 것으로 봐도 된다. 손가락이 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뜨거운 더위에도 맹렬한 추위에도 늘 꼿꼿하다. 이것이 무엇일까.

그래 맞다. 젓가락이다. 새삼스럽게 젓가락을 두고 무슨 법석이냐고? 이 정도는 약과다. 젓가락을 바라보며 절절한 마음을 얹은 시도 있다. 감상이나 해볼까.

“키 작은 화살처럼 생긴/ 너는 온통 빨갛게 채색되어 있구나/ 머리를 일렬로 맞춰서 함께 일하니/ 서로 떨어질 수 없네/ 삶은 돼지고기에서 뼈를 발라내고/ 기름 두른 파에서 국수를 건져내네/ 누가 헐뜯어도/ 흔들리지 않고 하던 일을 꿋꿋이 한다.”

원나라 관리였던 주치(?∼1213)가 썼단다. 이른바 ‘젓가락 예찬’. 왜 이런 시가 나왔을까. 젓가락의 강직성을 인간의 윤리성과 비교하려는 것이다. 근면하고 이타적인 젓가락의 노고에 공감을 표하며 정부관리로서 겪은 일을 빗대어 보려고. 제발 정부관리란 사람들이 헐뜯기는 그만하고 곧은 자세를 잃지 말기를. 한마디로 젓가락처럼만 하라는 거다.

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가 인류문화사를 젓가락으로 낱낱이 집어올렸다. 미국인이란 출신 덕분에 책은 영어로 쓰인 첫 젓가락 연구서란 영예를 꿰차게 됐다. 대륙에 젓가락을 꽂아 빙빙 돌리며 동아시아를 두루 살핀 건 중국계란 배경이 작용했을 거다. 저자에 따르면 젓가락은 중국서 태어나 이웃 나라에 전해진 걸로 돼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료의 차별에선 건져 놓은 거다. 중국과 대만,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고선 화석·벽화 등 고고학 유물은 물론 고전부터 현대논문까지 방대한 자료를 들춰냈다.

역사가들은 음식문명을 세 개의 문화권으로 나눈단다. 손으로 먹는 문화권,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문화권, 젓가락을 쓰는 문화권. 하지만 젓가락족이 보기에는 단출하게 두 가지 부류뿐이다. 젓가락질을 하느냐 못 하느냐. 결국 저자도 그것을 외치고 싶지 않았을까. 책은 두툼한 넘길거리를 헤치며 진정한 ‘호모 촙스틱쿠스’를 찾아다닌다.

▲숟가락과의 경합서 완승할 수 있었던 건

1993년 중국 장쑤성 신석기유적지인 롱치우장. 동물뼈로 만든 각종 도구 사이에 가느다란 뼈막대 42개가 딸려 나왔다. 기원전 6600∼기원전 5500년의 문물로 추정하는 인류 최초의 젓가락이란 거다. 재미있는 건 젓가락이 처음부터 식사도구는 아니었다는 추론이다. 조리도구가 먼저였단다. 재료를 집어 옮기고 휘저어 섞고 하는.

어쨌든 이 발굴을 근거로 저자는 북중국에서 젓가락이란 도구를 선호했을 거라고 단언한다. 춥고 건조한 날씨 탓에 뜨겁게 끓인 음식을 즐겼을 그들에게 최적화한 이기였다는 거다. 점착성이 있는 쌀밥을 주식으로 하면서는 주곡이 쌀이던 남중국에도 확산됐다고 했다. 밥과 반찬을 젓가락만으로 집어내 입으로 옮겨갈 수 있는 진기·명기가 이때부터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숟가락을 밀쳐내고 젓가락을 식사도구로 완승케 한 공신은 따로 있었다. 밀가루다. 국수·만두 같은 음식이 대유행을 하면서 숟가락의 기세가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이후에도 일사천리다. 주변에 영향력을 확대한 당나라 덕에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젓가락 영향력은 널리 퍼졌다고. 그러다가 14세기에 젓가락 문화권은 동아시아를 통일하게 됐다고.

▲한·중·일 같은 젓가락 다른 사정

내친김에 한·중·일의 젓가락 사정도 들여다보자. 조선의 문신 윤국형은 17세기 초 방문한 명나라에서 젓가락만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 기록에 남겼다. 사정은 지금껏 달라지지 않았다. 한·중·일 나아가 젓가락 문화권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균등하게 사용한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서 젓가락은 음식을 집거나 숟가락에 옮기기 위해서만 썼다. 그것이 예법이었다. 특징은 ‘금속’이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돼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진 것도 청동제였으니.

중국의 특징은 ‘길이’다. 25㎝ 이상 최장신을 자랑한다. 한 상에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먹는 공동식사방식이 굳어지면서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음식을 향한 무기라고 할까. 위치도 바뀌었단다. 원래 가로로 놓였던 것이 이후 세로로 놓이며 음식을 향해 돌진하는 자세를 취하게 됐다.

여전히 가로로 젓가락을 놓는 나라는 일본이다. 3국 중 가장 짧은 길이에 대부분 나무소재다. 이유가 있다. 한번 쓰고 바로 버리기 위해서란다. 투철한 위생관념? 아니다. 한번 입에 들어갔다 나온 젓가락에는 사람의 영혼이 붙는다나. 그래서 냉큼 버려야 한단다.

3국 모두에서 젓가락은 주요 선물품목이었다. 요즘은 많이 사라진 듯하지만 한국에는 진짜 금·은 수저세트까지 있었다. 중국서 최고의 소재는 옥이었나 보다. 저자는 그 특유의 색감 때문인지 되레 문학적 비유에서 많이 본다고 설명한다. 이백의 시구에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옥 젓가락 같은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거울 위로 뚝뚝 떨어진다.”

▲‘젓가락 함부로 놓지 마라’

인간을 두 부류로 쪼갠 젓가락족의 우월감이야 하늘을 찌르지만 포크·나이프를 무기로 든 서구인에게도 젓가락은 양 갈래인가 보다. 19세기 중반 중국을 찾은 영국 외교관은 “중국 음식을 먹기에 서양의 품위 없는 포크와 나이프보다 고상한 젓가락이 제격”이라고 인정했지만, 비슷한 시기의 한 여행가는 “식탁마다 악취가 풍기는 젓가락들이 한 뭉치씩 대나무통에 꽂혀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포크·나이프족이 어찌 생각하든 음식문명 중 최상의 도구라는 데 반기를 들 생각이 없다면 이제 어느 식당 수저통에 뒤섞인 젓가락이라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될 듯하다. 시인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연탄재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젓가락 함부로 놓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온탕 냉탕에 빠져가며 음식대접을 한 적이 있었느냐.’

수천년 동안 동아시아의 살아있는 전통. 그렇게 도구 이상으로 격상한 젓가락과 젓가락질에 관한 극찬이 결론으로 묶였다. 다 좋다. 죽 풀어놓고 수습을 안 한 듯한 아쉬움만 뺄 수 있다면. 하나 더 덧붙여 ‘젓가락 경제학’으로 양념거릴 만들었다면. 젓가락질이 지능·기량에 도움이 된다는 설이 타당한지, 인공지능에 과연 젓가락질까지 가르칠 수도 있는지. 궁금증만 잔뜩 늘어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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