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집은 건 정치도 종교도 아닌 '기업'

오현주 기자I 2014.05.01 05:35:00

"성공한 기업, 국가 초월해 발전 주도"
탄생부터 번영·쇠퇴·미래까지 조명
전략분석 아닌 기업-인류관계 풀어
…………………………………………
기업의 시대
CCTV 다큐 제작팀|476쪽|다산북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8세기 초반 영국 왕립 조폐국에 아이작 뉴턴(1642~1727)이란 이가 있었다. 그 사람 맞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구체화했다는. 사실 그는 과학자면서 조폐국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학자의 명성과는 달리 조폐국장으로선 결정적 오점을 남기게 됐으니, 주식투자로 가산을 탕진한 거다. 그때 돈으로 2만파운드쯤 날렸는데 이는 조폐국장의 10년 치 월급과 맞먹는 거액이었다. 이 국면에 맞닥뜨리자 위대한 과학자도 어쩔 수 없나 보다. 가슴 쓰린 한탄을 쏟아냈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예측할 수 없구나.”

가까운 시간으로 옮겨와 보자. 1929년 10월 24일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허둥대던 사람들은 ‘믿는 도끼’ 찾기에 열중한다. 그러다가 당시 JP모건이 했던 방식대로 한다면 분명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른다. 구세주로 존 피어폰트 모건의 아들, 잭 모건이 떠올랐다. 많은 투자자의 기대를 업은 아들 모건은 이후 증권거래소를 휙 둘러본 다음 유동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몇몇 은행가를 모았고 2000만달러 상당의 주식을 사들였다. 효과가 있었다. 그날 오후 주가가 크게 반등한 거다. 그런데 다음날, 개장과 함께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거 아닌가. 한 달 만에 1800억달러가 허공에 사라졌다. 결국 1930년까지 미국선 1352개의 은행이 파산하고 2만 6355개의 기업이 도산했다.

역사가 새긴 이 사건들이 남긴 교훈은? 기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필요하단 걸 각성시킨 거다. 중세 영국에선 주식투자자들이 헛된 꿈에서 깨어났다. 기업은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재앙도 불러온다는 걸 깨달았다. 현대로 옮겨와도 내용은 달리지지 않았다. 역시 기업은 재앙을 일으킨 근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했다.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도 바꿔놨다. “자신을 구하려면 먼저 시장부터 구하라.”

중국 방송사 CCTV가 제작한 10부작 다큐멘터리가 책 한 권에 엮였다. 기획에서 제작까지 2년이 걸렸다는 장구한 프로젝트. 의도한 건 이거다. ‘세계역사에서 기업은 어떤 진화를 해왔고, 세상을 어떻게 흔들어놨는지 한번 보자.’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함의를 끌어내게 됐다. 세계역사를 이끈 건 종교도 과학도 정치도 아니었다는 것. 바로 기업이더란 거다. 다시 말해 이념도 언어도 국가도 다르지만 세계는 하나로 묶였다. 다름 아닌 ‘코카콜라’라는 간판 아래서, ‘MS 윈도우즈’라는 PC 모니터 앞에서다.

▲“기업사가 곧 세계사다”

신이 내린 대단한 선물이 있다. 시간이다. 그런데 말이다. 감히 여기에 범접하는 무리가 나타난다. 1858년 4월 10일 영국 런던 템스강변에 95m 높이의 건물이 들어선다. 더 놀라운 건 그 건물에 분침길이만 4m가 넘는 시계 ‘빅벤’이 설치된 것. 이때부터 신이 만든 시간을 인간이 만든 시곗바늘로 측정하게 됐다. 세상을 뒤집은 이 일을 해낸 건 기업이었다.

기업은 그때부터 축이 됐다. 그들을 기점으로 세계와 경제를 돌리게 됐다는 뜻이다. 책의 원전이 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 직전인 2009년까지 기업은 세계인구의 81%에 일자리를 제공했고 세계경제력의 90%를 형성했으며 전 세계 GDP의 94%를 끌어냈다. 더욱이 기업은 한 국가 내에만 머물지 않고 움직였다. “국제적인 기업들이 국가를 초월해 국가의 발전을 주도할 것”이란 단언은, 비단 일본 경영그루로 불리는 오마에 겐이치의 말이라서 유명해진 건 아니다.

▲“기업 성장은 국가를 벗어나면서부터”

역사상 기업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인과 수메르인의 계약을 꼽는다. 좀더 진전된 형태로는 기원전 2000년 경 아시리아인이 처음 만든 펀드계약조항이 있다. 형태는 볼품 없지만 지향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이익창출이란 공동목표를 추구한다는 것.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까지 이 원리는 이어졌다.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을 믿었다. 그러나 19~20세기 상류층의 탐욕이 극에 달하고, 또 대공황으로 기업이 쓰러지기까지 하자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자처한다. 이때부터 국가와 시장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이 지점에서 책이 손을 들어준 건 기업의 자생력. 정작 기업이 성장한 건 국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서부터란 거다.

▲미래의 기업 모습? 아무도 모른다

기업의 아우라는 조직의 담을 넘었다. 제도와 문화는 물론 가장 사적인 영역까지 관통하며 끊임없이 꿈틀댄다. 다만 조건이 있다. 아무리 이익을 찾아 초특급 경쟁을 벌이더라도 기업이 포기해선 안 되는 한 가지가 있으니 ‘인류가치’란 거다. 그 어떤 기업도 사람의 이상적인 생활에 부합하는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미래의 승자가 될 수 없단 얘기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떤 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단다. 부와 권력, 과학기술, 문화 등이 기업의 잠재능력을 얼마나 끌어낼지 다시 죽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명확한 건 기업이 살아남을 거란 것. 이 복잡한 배경은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가 깔끔히 정리했다. “난 아직까지 시장서 경제활동을 할 때 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대안도 찾지 못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