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권모(61)씨는 자기 집이 있지만 12년째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마포구 도화동의 삼성아파트 전용면적 85㎡를 분양받은 그는 2001년 이 집을 세 준 뒤 보증금을 받아 전셋집을 떠돌았다. 권씨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와 인접한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권씨는 전세를 정리하고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갈 계획이다.
최근 2년 사이 자기 집을 세주고 타 지역에서 전·월세로 거주하는 가구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오름세가 꺾이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실거주 이외 투자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집을 처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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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의 ‘201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내 집을 갖고도 남의 집에서 전·월세를 사는 이른바 ‘무늬만 세입자’는 총 82만3421가구(무상거주 포함)로 집계됐다. 2010년(123만8901가구)보다 41만5480가구(33.5%) 줄어든 규모다. 지난 2년 사이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갖고 있던 집을 팔았거나 소유한 집으로 돌아간 셈이다.
지역별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자가 주택을 가진 수도권 세입자는 55만9924가구로 2010년(78만2729가구)에 비해 약 22만2805가구 줄었다. 5개 광역시와 8개 도지역 역시 9만7247가구와 16만6250가구로 같은 기간 각각 8만 가구 이상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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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타지에 집을 소유한 세입자 수가 급감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상황이 악화돼 투자목적으로 샀던 집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갖고만 있어도 돈 됐던 ‘집’이 ‘짐’으로…
과거 국내 1주택자에게 ‘내 집 따로’ ‘사는 곳 따로’인 현상이 자주 나타났던 건 집에 대한 소비와 투자수요가 함께 증가했던 데에 그 원인이 있다. 강민욱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이런 현상의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우리 특유의 전세제도”라며 “집값이 꾸준히 오르던 시기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뒤 다시 교통과 교육 등 주거환경이 좋은 곳에 자신이 살 전셋집을 구하면 소비와 투자수요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다르다. 집을 보유하는 데에 따른 장점이 예전만 못한 탓이다. 집값 상승기에는 집을 보유하고만 있어도 이익이었지만 지금은 거꾸로 집이 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같은 조사에서 현재 전세로 거주중인 주택소유자의 21.4%가 집을 매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매각 이유로는 29.6%가 ‘집을 보유할 만한 장점이 없어서’를 꼽았다.
또 향후 2년 내 이사할 경우 주택마련 방법을 묻는 질문에 수도권 가구의 23.4%가 기존에 소유한 집으로 이사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월세 가구의 절반 가량은 자가 마련을 위해 소유주택으로 이사갈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집값 안정되면 집가진 세입자 더 줄어들게 될 것”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 추이가 장기화하면 집 가진 세입자 수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2분기 부동산시장 동향’ 보고서를 통해 “양호한 주거환경을 갖춘 주거지가 많이 조성되고 주택가격이 안정되면 (주택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 현상은)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 수석연구원은 “부모 세대는 특히 자녀가 독립하는 노후에 접어들수록 주거와 소유의 분리를 일치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집 가진 세입자란
자기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주택 소유와 거주 간 불일치 가구를 말한다. 대표적인 게 자기 집을 세 주고 본인은 교육여건 등이 우수한 지역에 새 집을 얻어 세입자로 거주하는 경우다. 정부가 그간 ‘1가구 1주택’이란 정책 원칙 아래 주택을 대거 공급했지만 자가점유율(자기가 소유한 집에서 거주하는 비율)이 50% 대에 그쳤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이에 지난 2005년부터 관련 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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