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UT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벤처 시장이 위기에 봉착한 지금, 밝은 미래가 올 것이란 전망만 내놓아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당장 유동성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투자금이 늘어난다고 해서 벤처투자 시장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각 기업의 사업 특성을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밸류를 창출할 수 있는 곳에 돈이 흘러가는 ‘순환 생태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며 “지난 몇 년간의 투자 결과를 통해 해석을 해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보조금처럼 쓰이고 없어지는 돈이 아닌, 더 큰 밸류로 회수할 수 있는 ‘진짜 투자’를 하는 것이 VC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
김 대표는 2024년 1월 UTC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선임돼 이제 꽉 찬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11년부터 소프트뱅크벤처스(현 SBVA) 심사역으로 시작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하나벤처스 초대 대표이사로 활약한 자타공인 벤처투자 전문가다. 하나벤처스는 지난 8월 기준 운용펀드 자산총액(AUM)이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하나벤처스의 키를 쥐었던 시기를 “0에서 1을 만드는 경험”이었다고 회고한 그는 그 경험을 활용해 시행착오들을 줄여가며 UTC인베스트먼트를 이끌 수 있게 됐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대표는 부임 이후 5개 본부로 나뉘어 있던 VC 조직을 3개 본부로 줄이는 등 ‘팀 플레이’를 강화하기 위한 초석을 쌓는 작업도 진행했다. 투자처 발굴 이후 심사나 사후관리 단계에서는 한 팀처럼 움직여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김 대표의 투자철학이 반영됐다.
그는 “VC 투자에는 발굴, 투자 심사, 사후 관리, 회수의 4단계가 있는데 이 중 일부는 개인의 역량이, 일부는 회사로서 팀의 역량이 돋보여야 한다”며 “새해에는 ‘팀 플레이’의 비중을 좀 더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스타트업과 VC가 보는 밸류 간 갭 좁혀져야 투자 활성화”
그런 그가 내다본 올해 벤처투자 업계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최근 국내 증시에 상장한 대부분 신규 기업들이 하나같이 주가 급락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VC들의 회수유형 중 기업공개(IPO)는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코스닥에 상장하는 기업의 약 90% 이상은 VC의 투자를 받는다. 공모주 시장 한파가 VC의 고민을 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김 대표는 “작년은 VC가 생각하는 기업의 밸류와 기업이 기대하는 밸류 간 갭이 좁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갭만 좁혀져도 투자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밸류에이션을 두고 눈높이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투자를 결정할 때는 해당 기업이 성공적으로 상장했을 때를 가정하고, 거기서부터 역산해서 현재의 가치를 계산한다”면서 “그런데 상장 이후 VC들의 보호예수가 풀렸을 때 주가가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디스카운트를 적용해 현재를 보면 기업가치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밸류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거나, 증시가 회복돼서 제값을 받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당연히 후자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 “환경 힘들어도, VC는 한 해 보고 투자하는 것 아냐”
그래도 투자를 멈출 수는 없다. 다시 시장이 회복될 때를 기다리며 ‘스프링’처럼 튀어 오를 영역을 찾아내 투자하는 것이 VC의 역할이라고 김 대표는 보고 있다.
그는 “올해는 코로나19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다르게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 없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면서도 “VC는 한 해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장이 좋아질 때 눌러져 있던 스프링이 가장 많이 튀어 오를 수 있는 영역을 찾을 것이다”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해는 인공지능(AI) 서비스 스타트업과 방산·항공·우주, K-라이프스타일(콘텐츠·푸드·뷰티) 섹터에 집중할 예정이다”라며 “국내에서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통하는 역량을 가진 스타트업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특히 작년 한 해를 보내면서 AI 투자에 대한 기준을 확립했다”며 “10조원 이상을 써야 하는 AI의 핵심 기술 관련 투자를 보기보다는 현실적으로 VC가 투자할 수 있는 AI를 활용한 서비스 스타트업들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콘텐츠 투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가 가능한 지식재산권(IP)을 생산해내는 기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낼 수 있는 제작사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올해에는 본격적으로 펀드레이징(자금조달) 작업에 나설 예정”이라며 “정보통신기술(ICT)에 투자하는 펀드와 바이오 펀드로 각각 500억원 규모로 조성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