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 20만 시대의 명암[이희용의 세계시민]

최은영 기자I 2024.09.30 05:00:00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지난 4일 교육부가 발표한 올 4월 기준 국내 고등교육기관의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해보다 15% 늘어난 20만8962명이다. 2012년 교육부가 ‘스터디 코리아 202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내건 2020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20만 명 유치 목표를 4년 늦게 달성한 것이다.

지난 8월 5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내 오천댁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 전통 단오 풍습인 창포물 머리 감기를 체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5년 교육부가 “나라 안팎의 여건 변화로 유학생 수가 정체됨에 따라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목표 시기를 3년 늦췄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과 2021년 유학생이 급감했던 것을 고려하면 무난한 성공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외국인 유학생 20만 돌파 시기가 2023년 1월로 1년 이상 앞선다.

재외동포청 집계로는 2022년 말 재외 한국인 유학생이 15만1116명이다. 2020년 17만1343명에서 12% 줄어들었고 2018년 29만3157명에 비하면 절반에 가깝다. 교육부 자료에서도 해외 한국인 유학생 숫자는 2021년 4월 15만652명에서 2022년과 2023년 12만 명대로 떨어졌다.

이들 통계를 종합하면 2021년을 전후해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유학생이 해외로 나간 한국인 유학생 숫자를 넘어섰다. 유사 이래 만성적인 유학 수지 적자국 신세를 못 벗어나다가 드디어 흑자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삼국시대 의상 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떠난 이래 언제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K팝, K푸드, K뷰티 등에 이어 K교육이나 K유학이란 말도 생겨났다.

내친김에 교육부는 2027년까지 30만 유학생을 유치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유학생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스터디 코리아 300K)을 지난해 8월 내놓은 상태다. 이달 초에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1주기 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정작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나 앞으로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교수나 관리와 상담을 맡은 직원이나 이들을 채용하는 기업이나 모두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학교나 사회에서 답답한 일을 겪어도 도움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유학생),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많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교수), “아르바이트 등 돈벌이에만 관심 있는 학생이 많다”(교직원), “학위를 따고도 비자 조건이 까다로워 취업하기가 너무 어렵다”(취업준비 유학생), “대학에서 학습용 한국어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한국어도 가르쳐주거나 그런 교재가 있으면 좋겠다”(기업 관계자), “지방에서는 유학생들이 3D 업종은 물론 전문직 일자리에도 안 오려고 한다”(지방기업 관계자).

교육부 및 관계기관과 각 대학은 유학생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이들을 사실상 방치하다 보니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불법 취업한 경우도 많다. 지난 5월에는 전남대 대학원에 다니던 한 유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유학생의 절반가량이 국내 취업을 바라는데도 실제 취업률은 8%에 지나지 않는 것도 아쉽다. 내국인 취업준비생들과의 이해충돌 가능성 등도 꼼꼼히 따져봐야겠지만 우수 인력 유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하고 학력 수준도 높은 유학생들을 졸업하자마자 돌려보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는 섣부르게 다음 목표를 위해서만 질주할 때가 아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을 살펴보고 학습 효과나 취업 실적 등도 점검한 뒤 개선방안을 마련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

유학생 유치의 긍정적 효과는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교직원들이 보람을 찾지 못하고 유학생들의 푸념과 항의가 터져 나오고 외국인 유학생을 채용한 기업들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20만이나 30만이라는 숫자는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스위스의 극작가 막스 프리슈의 연극 ‘시아모 이탈리아니’(우리는 이탈리아 사람이다)에서는 “우리가 원한 건 일손이었는데 사람이 왔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주노동자를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도구로 여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유학생 역시 학령 인구 감소를 대체할 등록금이나 서비스업 등의 인력 부족을 메워줄 아르바이트 노동력이나 국제화라는 슬로건을 돋보이게 만드는 고명이 아니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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