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지구도 장맛비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공주 공산성 누각 만하루 일대는 거대한 흙탕물 천지로 변했다. 누각인 공산정 부근의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금서루 하단의 토사도 흘러내렸다. 부여에서는 왕릉원 서고분군 2호분의 봉분 사면이 일부 무너졌고, 19세기 건물인 여흥민씨 고택(중요민속문화재)도 행랑채 외벽이 파손됐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유물보호를 위해 잠시 휴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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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 문화유산은 나무나 흙, 돌이 포함된 경우가 많아 집중 호우와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사찰이나 고택의 경우는 대부분 산 아래에 있어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면 속수무책이다.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전국을 강타한 집중 호우는 국가지정 문화유산에도 피해를 안겼다. 경북 예천 청룡사의 경우 경내 지역에서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보물인 비로자나불좌상과 석조여래좌상의 안전 관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가등록문화재인 전남 영광 창녕조씨 관해공 가옥은 담장 두 구간이 무너져 내렸다.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여겨졌던 사적 ‘순천 낙안읍성’의 경우 사적 내 관아동 내아와 동헌 기와가 떨어지고 민가동이 침수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1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피해가 확인된 사례는 총 47건(오전 11시 기준)으로 집계됐다. 피해 사례를 보면 사적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천연기념물 7건, 명승 6건, 국가민속문화재 9건, 보물·국가등록문화재 각 2건, 국보 1건 등도 피해를 보았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1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충남·전남 각 7건, 전북 5건, 강원·충북 각 3건, 서울·경기·부산·광주에서 각 1건씩 나왔다.
집중호우로 인한 문화유산의 피해건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5년간 총 218건의 문화유산 피해가 발생했다. 2018년 16건에서 2019년 6건, 2020년 61건, 2021년 23건, 2022년 112건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유산은 오랜 기간 외력에 취약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며 “최근에는 집중호우로 지반이 약화하면서 기초부의 유실 등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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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노출된 천연기념물도 피해를 입었다. 지질학적 연구 가치가 커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온달동굴의 경우 내부 탐방로 전체가 침수됐다. 이에 급히 전기를 차단하고 관람객 출입을 통제한 뒤 배수 작업을 진행했다. 1380년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의성 사촌리 가로숲’의 나무 한 그루도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또 다른 천연기념물인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에서는 보호각 지붕 일부가 파손되면서 크레인까지 동원됐다.
문화유산에 피해가 발생하면 각종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토사를 치우고, 담장을 복구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이러한 복구활동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2020년 문화재 긴급보수를 위해 지출한 비용은 43억3000만원(63건), 2021년 41억원(47건), 2022년 42억4000만원(62건)이었다.
발생하는 자연재해를 막을 순 없지만 선제적으로 예방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서 구축한 기후변화·재해 관련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산림청의 산불상황관제시스템과 환경부·국토교통부의 시스템을 문화재 관리에 활용되는 GIS 기반 시스템과 연동해 문화유산의 위험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광용 제주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문화·자연유산에 최적화된 맞춤형 지수들을 개발해 문화재 유형별로 기후변화 대비 정책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기후변화의 위해성, 취약성, 리스크를 정량화해 앞으로의 재해에 대비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 안전기준과에서는 ‘국가유산분야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수립 기초연구’를 진행해 왔다.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관계자는 “연구를 토대로 한 국가유산 기후변화 대응 기본계획을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라며 “문화유산 유형별 풍수해 예방전략 마련을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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