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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수사본부에 “김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살하려고 야산에 올라갔는데, 한 어린이가 지나가기에 몇 마디 대화하다가 일을 저질렀다”며 “목을 매려고 들고 간 줄넘기로 어린이의 두 손을 묶고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2019년 12월 수사본부가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김 양이 실종되고 약 5개월 후인 같은 해 12월 21일 김 양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 지역 주민들에게서 “야산에서 줄넘기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2019년 이춘재의 진술과 일치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담당 경찰관이던 형사계장 A씨와 형사 B씨는 이를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오히려 김 양의 시신과 유류품을 은닉했다. 이들은 앞서 김 양의 아버지 고 김용복(2022년 9월 사망) 씨의 두 차례에 걸친 수사 요청도 묵살한 상태였다.
결국 사건은 1990년 8월 단순 가출 사건으로 종결됐다. 아무런 문제없이 학교에 잘 다니던 8세 여아가 갑자기 사라졌고 양손이 묶인 유골이 발견되면서 범죄 피해 가능성이 상당한데도 김 양을 스스로 집을 나간 ‘가출 어린이’으로 둔갑시킨 것이었다.
수사본부는 당시 경찰이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고 A씨와 B씨 2명을 사체 은닉 및 증거 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다. 그들의 김 양 시신 은닉 및 사건 은폐 등 범행 시점은 1989년 12월 21일에서 25일 사이로 추정됐으나, 구체적인 시신 은닉 수법과 동기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동기와 관련해선, 당시 이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던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A씨 등이 심적 부담을 가진 것 아니었겠냐는 추측만 제기됐다. A씨와 B씨는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 처벌을 피했다.
A씨는 이 사건 외에도 이춘재 연쇄 살인 8차 사건도 실무 수사 책임자였는데,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씨의 청구로 이뤄진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그러나 2020년 10월 열린 해당 사건 재심 공판에서 A씨는 화성 초등생 사체 은닉 혐의에 대해 “금시초문이다. (재수사를 한) 경찰이 짜 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양 유족은 지난 2020년 3월 김 양의 사체와 유류품을 발견하고도 이를 은닉하는 등 사건을 은폐·조작한 경찰의 불법 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해 11월 수원지법 민사15부(부장판사 이춘근)는 김 양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2억2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위법 행위로 유족은 피해자인 김 양을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 사망 원인에 대해 알 권리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은 김 양의 사망 여부를 알지 못한 채 장기간 고통 받았고, 사체도 수습하지 못했다. 이 같은 피해는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하기 어렵다”며 “수사 기관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닉했고 국가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훼손돼 금전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김 양의 부모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배소 제기 이후 차례로 사망해 재판 결과를 보지 못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김 양 오빠는 “동생의 소식을 기다린 30년보다 소송 판결까지 2년 8개월을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다”며 “재판부가 국가 책임을 인정하긴 했으나, 당사자인 경찰들이 사죄를 꼭 했으면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