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물론 여러 나라 사람들로부터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나모리 카즈오 전 교세라 창업자(1932~2022.8)만큼 생애와 업적, 인품과 관련한 일화가 국내에 많이 소개된 일본 기업인은 거의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가 꼭 20년 전인 2002년 10월, 국내 한 일간 신문에 장문의 칼럼을 기고한 일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기자는 주일특파원 시절 맺은 인연과 그의 서울 초청 강연 준비를 위해 여러 차례 면담한 경험이 씨앗이 돼 일본어 원문을 번역해 싣게 됐다. ‘부도덕 경영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대목이지만 그는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사는 법은 고매한 철학과 종교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스승으로부터 “욕심부리지 말라” “남을 속이지 말라” “정직하라” 등의 가장 기본적 규범을 가르침 받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일견 단순하고 쉬워보이다 못해 싱겁다고 느껴질지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나라 안팎을 에워싸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과 쏟아지는 말들에 비하면 그의 외침은 천근만근의 값진 교훈이자 살아 있는 도덕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도덕률이 잔소리로 취급받고 윤리·규범이 있으나마나한 장식물로 전락한 현실을 고려하면 부모, 스승의 가르침만 따랐어도 사회가 이토록 망가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다. 탁월한 능력의 기업인 이전에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신념을 평생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고 살았던 그의 글은 그래서 지금도 잊히지 않을 깨우침으로 남아 있다.
부모와 스승으로부터 어릴 때부터 가르침 받은 내용을 2022년 한국의 정치권에 대입시켜 보면 어떤 답이 나올까.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분야가 어디에고 없을까만 정치권만큼 탁류가 도도히 흐르고 거짓과 탐욕, 험한 말이 당연시되는 곳은 더 없을 것이다. 입이 부르는 화(禍)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 고대로부터 수없이 전해져 왔지만 정치인들의 눈과 귀는 닫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동양의 경구도,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라는 서양 철학자의 금쪽같은 가르침도 시끄러운 소음일 뿐일 가능성이 크다.
거짓말은 기본이요, “찢어버리겠다. 묻어버리겠다. 잡아넣겠다” 등 듣기에도 섬뜩한 막말과 육두문자를 예사로 퍼붓는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당 대표와 원로급은 물론이요 신인들도 뒤지면 큰일 날세라 언어 오염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와 특정인 이름을 일일이 들지 않아도 인터넷 공간엔 이들이 날린 막말과 지키지 않은 약속, 증오와 적개심 가득한 언사가 차고 넘친다. 명백한 증거와 사실을 앞에 놓고도 잡아 떼는 뻔뻔함과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강심장은 애교에 불과하다. 반듯한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라곤 믿기 어려운 독극물이다. 이쯤 되면 대의는 포장에 불과할 뿐, 당리당략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꺼낸 발언과 행동이라는 것을 국민이 모를 리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에게 맞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정의”라며 “정치가는 지혜로 나라를 잘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의식도 품격도 찾아볼 수 없이 막말과 세금 퍼주기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에 이런 가르침이 통할 수 있을까. 24일 끝나는 국정감사 역시 정치인들의 험한 말과 입, 그리고 정쟁과 퇴장, 철수로 얼룩졌음을 감안한다면 기대 난망임이 분명하다. 그저 눈앞의 경제 위기 앞에서도 진흙탕 싸움으로 국민의 스트레스를 높이는 ‘참사’만은 더 없으면 좋겠다. 부모님과 스승이 물려준 마음의 도덕 교과서를 정치인들이 한 번쯤 꺼내 들기 바라는 심정 간절하지만 기자의 헛된 욕심으로 끝날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