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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검찰에 워라밸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검수완박’ 법안은 부패 및 경제 범죄를 제외한 검찰의 4대 범죄(선거·공직자·방위산업·대형참사) 수사권을 폐지하고 보완 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검사들 그 중에서도 평검사들의 직무 부담이 대폭 줄어드는 셈인데 정작 전국 일선 청의 평검사들은 긴급 회의를 열고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검수완박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진영 수원지검 검사는 최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검사들도 요즘 추세처럼 가족과 자신을 위해 여가 시간을 갖는 ‘워라밸’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온갖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 검수완박을 반대하고 있다”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검사 선서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편한 검사 생활’ 대신 ‘힘든 검사 생활’을 선택하려는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또 서혜선 법무부 소속 검사는 “부모님을 부양하고 지방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업무량이 많이 줄어들 검수완박이 유리할 것 같다”며 “지역 세력들과 유착할 권력도 없으니 이참에 다른 공무원들처럼 한 권역 내에서만 인사 이동이 이뤄지면 복지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아무리 밤을 새우고 주말까지 바쳐도 사건은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며 “그럼에도 저를 비롯한 검사들이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이유는 일반 서민들의 일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경험에 근거한 걱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의료 사고 분야 공인전문검사 인증을 받고, 가수 고(故) 신해철 씨 사망 사건 등을 수사한 의사 출신 장준혁 서울서부지검 검사는 이프로스에서 “저는 어디를 가나 ‘의사직을 저버린 것이 후회되지 않느냐’, ‘돈도 더 잘 버는 직업을 왜 포기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 기록이 배당되면 밤을 새워가면서 복잡한 영어와 약자로 기재된 의무 기록을 하나하나 대조하고 허위 작성된 의무기록을 찾기도 했다”며 “그렇게 억울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수사하는 게 좋아 검사직을 선택했고 후회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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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호동 대구지검 검사는 “검찰의 과오는 물론 반성해야겠지만, 일부가 표현하는 것처럼 검사는 괴물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며 “그냥 하루하루 성폭력범, 살인범, 폭력범 같은 나쁜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게 검사의 일이다. 보통 선량한 국민들은 검사들을 볼 일이 잘 없다 보니 막연한 의식이 퍼진 듯 하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일선 평검사는 “검찰이 처리하는 사건의 99%는 아동학대, 성범죄 등 민생과 직접 연결된 사건들이고 지금 정치권에서 문제삼는 정치적 사건의 비율은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며 “애초 평범한 검사들은 권력이나 정치에 눈 돌릴 틈이 없고 뉴스에 나오는 검찰 소식이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평검사들의 움직임에 대해 검찰 출신 조주태 변호사는 공적 책무 의식과 사명감의 표출이라고 해석한다. 조 변호사는 “검사 임용 면접에서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을 배제하기도 한다”며 “애초에 워라밸을 추구하고 국민의 사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검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평검사들이 검수완박 저지전에 적극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MZ세대가 다수인 평검사들이 선배들의 구태와 단절 선언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 전국 평검사 207명은 지난 19일부터 무박 2일 간의 전국 평검사 대표 회의를 가진 후 기자들과 20일 가진 브리핑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저희가 나서서 말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선배 검사들의 과오’와 선을 긋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