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양극화]'돈 되는 곳' 아니면 청약통장 안쓴다

김용운 기자I 2019.04.08 04:30:01

대출 제한, 종부세 강화 등에
'한 번 분양받을 때 잘 받자' 확산
로또 단지 가능성 높은 곳 몰려
건설업계 "내수경제 피해 우려"

올 들어 서울·수도권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청약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웬만한 지역도 청약 인파가 몰리던 작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문을 연 ‘힐스테이트 북위례’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방문객들고 북적이고 있다. (사진=현대엔지니어링)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무주택자들도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곳 아니면 청약통장을 꺼내지 않는다. 분양 마케팅도 무주택 실수요자 모시기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아파트 분양권을 1주택으로 간주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면서 서울·수도권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인기지역도 내놓기만 하면 팔리던 작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정부의 규제로 분양 일정을 올해로 미룬 대기 물량이 수두룩 한데다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도 더 강화될 조짐이어서 당분간 이 같은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깐깐해진 무주택자…“시세보다 분양가 20%는 저렴해야”

금융결제원 청약사이트 ‘아파트 투유’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서울과 수도권 분양아파트의 1순위 청약 미달률은 24.1%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 11.5%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청약 경쟁률 양극화가 심화된 점이다. 올해 1월 GS건설이 경기 하남의 위례신도시 A3-1블록에 분양한 ‘위례포레자이’는 1순위 청약 결과 487가구 모집에 6만3472명이 몰리며 평균 130.3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위례신도시 북동쪽에 자리한 위례포레자이는 3.3㎡ 당 평균 1820만원의 분양가를 책정해 ‘로또 분양 단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위례신도시 아파트의 3.3㎡ 당 평균 시세보다 약 30~40% 저렴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달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분양한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 파크’는 1순위 청약 미달을 기록했다.

청약경쟁률이 극과 극인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월 말 인천 서구 ‘인천불로 대광로제비앙’은 1순위 청약경쟁률이 0.03대 1에 불과했다. 대우건설이 검단신도시 AB16블록에 분양한 ‘검단 센트럴 푸르지오’도 1순위에서 계약자를 채우지 못하고 선착순 분양을 통해 입주 물량을 소화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이달 들어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의 ‘힐스테이트 북위례’는 평균 경쟁률 77.3대 1을, 청량리 일대 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첫 분양에 나선 효성중공업의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도 31.1대 1을 기록했다. 반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나온 ‘호반써밋 송도’는 1순위 청약에서 미달을 기록한 주택형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아파트 청약 양극화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로 정부의 규제 강화를 꼽았다. 주택담보대출을 40%로 제한하고 분양가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중도금대출도 못하게 막았다. 주택 공시가격에 따른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부담 증대로 무주택자들도 내 집 마련을 꺼리게 됐다. 분양시장에서도 청약가점제를 확대해 청약가점이 높은 무주택자에게만 기회가 돌아가도록 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청약통장의 가치가 높아졌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여유가 생긴 무주택자들은 ‘한 번 분양받을 때 잘 받자’는 심리가 더 강해지고 있다”며 “실수요자 위주의 아파트 분양 정책이 지속하는 한 수도권 분양시장에서 이른바 ‘돈 되는 아파트’에만 몰리는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주택 수요자들이 몰리는 신규 분양 아파트를 보면 공공택지에 지으면서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대출 규제가 없는 곳이란 공통점이 있다”며 “이런 조건에 걸맞지 않은 아파트는 앞으로도 청약경쟁률이 높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풀어야” VS “계약조건 완화해야”

건설업계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심광일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택 경기가 경착륙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매우 크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환매조건부 미분양주택 매입을 다시 시행하는 등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약 양극화에 따른 미분양 아파트의 속출로 주택 경기가 경착륙한다면 결국 그 피해가 내수경제 전반에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임원은 “건축 원가가 오르는 마당에 무턱대고 분양가를 낮출 수도 없고, 금융비용 때문에 마냥 분양을 미룰 수도 없고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작년처럼 분양이 잘 될 것으로 보고 ‘천천히 팔면 된다’는 생각에 계약 조건을 수요자의 눈높이보다 높게 내거는 게 미분양의 원인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초 서울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는 청약 미달이 돼서야 계약 조건을 완화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관리실장은 “실수요자들의 눈높이가 예전보다 까다로워졌다”며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건설사가) 직접 중도금 대출 보증을 해주거나 계약금 비율을 낮춰주는 등의 선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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