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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표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는 손쉽게 예타를 피해간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역균형발전 등을 이유로 예타를 면제한 사업 규모만 29조 5927억원이나 된다. 지난해에만 26건, 총사업비 12조원에 달했다.
경제성이 떨어지더라고 재해예방이나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을 앞세워 특별법을 만들거나 시행령 예외조항을 신설 또는 활용해 사업을 강행한다. 이렇게 제도의 빈틈을 활용해 예타를 피해간 사업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냈다.
◇예외조항에 ‘재해예방’ 끼워넣은 MB정부
2009년 이명박정부 당시 추진한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2009년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예타면제 가능 사업으로 ‘재해 예방·복구 및 안전으로 시급을 요하는 사업’을 끼워넣었다. 홍수와 가뭄을 막기 위해서는 보 건설·준설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예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4대강 사업 전체 예산 22조2300억원 중 19조7600억원 규모의 사업이 예타를 받지 않았다.
지난해 감사원이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실태 점검 및 성과분석’ 자료를 보면 비용 대비 편익비율은 0.21에 그쳤다. 100원을 투자하면 21원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성은 물론 정책효과도 기대이하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 때 건설한 16개보 인근 수질을 조사한 결과 11개 보에서 조류경보 관심단계 이상 수준의 남조류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제라도 보를 철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건설 때는 예타가 면제됐지만 철거 때는 (B/C)분석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이 안정적으로 물을 이용하거나 강을 정비하는 효과가 있었다며 철거를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는 철거냐 유지냐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균형발전 명목으로 면제받아 SOC·국제대회 유치
이명박정부는 2008년에도 예타면제 조항을 활용해 대대적인 토목사업을 펼쳤다.
△동북아 제2허브공항(동남권) △제2영동고속도로(강원권) △동서4축고속도로(충청권) 등 30대 SOC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균형발전은 예외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적용해 21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했다.
‘F1 코리아 그랑프리 사업’도 균형발전 명목으로 특별법까지 제정해 예타를 피해간 사업이다.
전남도는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영암에 포뮬러원(F1) 경주장을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정부는 2009년 특별법을 제정해 예타를 면제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차례 대회를 유치했지만 흥행부진으로 매년 적자를 냈다. 전남도가 지금까지 입은 손실은 투자비 1조원, 운영비 6000억원에 달한다. 특별법을 제정해 예타를 면제한 강원 평창올림픽 시설도 매년 40억원 넘는 운영비를 세금으로 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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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타를 통과한다고 해서 사업성이 모두 검증되는 것은 아니다. 4대강 사업과 함께 추진된 2조2500억원 규모의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은 예타를 통과했지만 ‘깡통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요를 부풀려 계산해 예타를 통과했지만 실제로는 운하 물동량이 수요예측치의 5%에 불과했다.
용인 경전철과 의정부 경전철도 수요 부풀리기의 대표적 사례다.
용인시에 따르면 용인 경전철 이용자수는 2018년 현재 1000만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운영적자는 400억원에 이른다. 의정부 경전철 역시 2012년 7월 개통했지만 적자누적으로 파산했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이용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과거 선례를 보면 예타 면제로 예산을 무분별하게 쓴 후유증이 심했다”며 “29일 무분별한 예타 면제 결과가 발표되면 다음 정권과 미래 세대의 부담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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