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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미술시장] '5000억원' 확 커진 덩치 유지할 키워드 셋

오현주 기자I 2019.01.07 00:12:00

#① 양대옥션·김환기…여전한 '편중' 극복
#② 2012년 이후 증가세 탄 '거래작품 수'
#③ 문턱 낮춘 '온라인경매' 파이 키워야

김환기가 1972년에 그린 붉은 색 전면점화 ‘3-Ⅱ-72 #220’.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200만홍콩달러(약 85억 2996만원)에 팔리며 김환기를 총 354억원의 ‘낙찰총액 1위 작가’로 재확인시켰다(사진=서울옥션).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국내 미술시장이 확 커졌다. 미술계는 지난해 말 연달아 발표된 각종 지표로 한껏 들뜬 분위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8 미술시장실태조사’를 통해 2017년 기준 미술시장 규모를 4942억 3600만원으로 내놨다. 전년(3964억 6900만원)에 비해 977억 6700만원(24.7%)이 늘어난 수치고, 2008년 ‘미술시장실태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이어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는 ‘2018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연말결산’에 처음으로 2000억원을 넘긴 2194억원을 달아 움츠러든 기운을 단숨에 뒤집었다. 이 역시 20년 전 경매시장을 형성한 이후 최고 거래액이다.

문제는 늘 그렇듯 유지고 성장이다. 끌어올리는 건 한참이지만 무너지는 건 순간이니까. 실제 국내 미술시장은 2007년 6044억원으로 정점에 오른 뒤 추락을 거듭하다가 2013년 3249억 2700만원으로 바닥을 찍고 나서야 서서히 회복세를 타는 중이다. 경매시장도 다를 바 없다. 2014년 전년 대비 35%가 성장한 971억원에 이어 2015년 1880억원으로 뻗쳐오른 뒤, 2016년 1720억원, 2017년 1890억원, 지난해 2149억원까지 자리를 잡아가는 터.

그렇다면 ‘황금기’라 불렸던 2007년 6000억원대 이후 바로 곤두박질쳤던 미술시장이 이제야 간신히 목전에 두게 된 5000억원대를 어찌 유지하고 성장시킬 건가. 그 숙제를 보자니 화려한 수치 앞에 버텨 선 유독 큼직한 점이 눈에 띈다. ‘편중’이다. 국내 경매시장서 양대산맥을 세우고 있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지난해에도 예외없이 91%(2001억원)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과시했다. 서울옥션이 58.63%(1286억원), 케이옥션이 32.58%(715억원). 2017년 양대 경매사가 세운 기록 89%(1689억원)보다도 늘어난 비중이다. 2017년 서울옥션은 50%(950억원), 케이옥션은 39%(739억원)의 성적표를 쥐었더랬다.

두 경매사의 위압적인 시장점유율에 나머지 7개 경매사는 9%의 파이를 나눠 먹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는데. 서울·케이옥션의 뒤를 이어 아트데이옥션(3.37%), 마이아트옥션(1.96%), 아이옥션(1.58%), 에이옥션(1.51%), 칸옥션(0.54%), 꼬모옥션(0.05%), 토탈아트옥션(0.01%) 등의 순위지만 별 의미가 없는 줄세우기다.

2018년 경매사별 비중도. 국내 경매시장서 양대산맥을 세우고 있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지난해에도 예외없이 91%(2001억원)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과시했고, 나머지 7개 경매사가 9%의 파이를 나눠 먹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사진=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다만 기형적인 구조인 ‘편중’ 사이로 긍정의 신호가 보이기도 한다. ‘거래작품 수’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 아울러 중저가 시장을 키워 미술품 구매의 문턱을 낮춘 ‘온라인경매’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는 것. 5000억원대 확 커진 덩치를 유지할 과제이자 키워드 ‘셋’이다.

△경매사·화랑·김환기…여전한 ‘편중시장’ 대안은?

‘쏠림’이란 한 단어로 요약할 미술시장의 불균형은 비단 양대 경매사가 나눈 경매시장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2018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화랑은 전체 455곳 중 상위 3곳이 63.0%, 또 아트페어는 49곳 중 상위 2곳이 55.2%로 미술시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특히 화랑 상위 3곳의 점유율은 전년 대비 10.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편중구조를 공고화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쏠림은 작품에서 드러난다. 5∼6년째 부동의 블루칩으로 경매시장을 이끄는 ‘김환기’(1913∼1974)다. 해마다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은 오로지 김환기만으로 가장 비싼 작품의 순위를 갈아치우고 있는데, 지난해에도 여지가 없었다.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200만홍콩달러(85억 2996만원)에 팔린 붉은 점화 ‘3-Ⅱ-72 #220’(1972), 이보다 두 달 앞선 3월 역시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2900만홍콩달러(39억 6000만원)에 팔린 반구상화 ‘항아리와 시’(1954)가 그것이다. 이들을 앞세워 김환기가 지난해 경매시장서 거둔 성적은 354억원(107점). 2위 이우환이 기록한 152억원(116점)과는 2배 이상의 격차다. 이로써 낙찰총액 1위 작가 ‘김환기’는 10위권에 7위(이중섭의 ‘소’)와 9위(박수근의 ‘빨래터’)만 빠진 8점을 다시 채워놨다.

‘환기불패’의 신화가 확고해진 건 2015년 10월부터. 푸른빛 전면점화 ‘19-Ⅶ-71 #209’가 3100만홍콩달러(약 47억 2100만원)에 낙찰되며 8년여간 지켜온 박수근의 ‘빨래터’(45억 2000만원)를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리면서다. 이후 2016년은 말 그대로 김환기의 해였다. 4월·6월·11월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나오는 대로 최고가를 깼다. 여기에 2017년 ‘고요 5-Ⅳ-73 #310’(1973·65억 5000만원)이 가세했고, 지난해 ‘3-Ⅱ-72 #220’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가 톱10’. 2018년 낙찰총액 1위 작가 ‘김환기’의 작품이 10위권에 7위(이중섭의 ‘소’)와 9위(박수근의 ‘빨래터’)만 빠진 8점을 다시 채워놨다(그래픽=문승용 기자).


자, 그렇다면 한국 미술시장에 빛도 내고 그림자도 드리우는 ‘편중·쏠림’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건가. 어찌어찌 수치는 키우고 있지만 자칫 한쪽이 무너지면 시장은 언제든 삐끗할 리스크를 안고 있으니. 화랑계 한 인사는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돌다리도 두들겨 안전하게 투자하려는 자본의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며 “경매회사든 화랑이든 김환기든, 그들의 독주를 막을 대안이 나서긴 어려운 구조”라고 말한다.

이에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조금 다른 형태로 분석한다. “어차피 고가의 작품과 중저가의 작품이 각각 형성하는 시장 자체가 섞일 순 없다”는 거다. 그는 “큰손이 아무리 급해도 온라인에서 작품을 사진 않을 것”이라며 “김환기를 끌어내릴 것이 아니라 이우환·백남준 등 100억원대를 겨냥한 새로운 작가군을 발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쏠림이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100억원대 수십 점이 나와야 굳이 하향평준화를 하지 않고도 키워 나아갈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된다”는 뜻이란다.

△작품거래 수 꾸준히 늘릴 복안은?

그럼에도 고무적인 건 ‘거래작품 수’다. 2017년 기준 국내서 거래한 미술품은 3만 5678점. 2016년(3만 3348점) 대비 2330점(7.0%)이 증가했다. 이는 최근 8년 새 가장 낮았던 2012년 2만 5195점 이후 2013년 2만 6865점, 2014년 2만 6912점, 2015년 2만 8415점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연장선상이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수요층이 만들어졌단 얘기”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미술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형성됐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다만 1차시장(화랑·아트페어)에서의 작품구매율이 2차시장(경매)을 넘어서는 구조를 기대했다. 실제로 거래작품 총 3만 5678점 중 화랑에서의 1만 1188점과 아트페어의 3003점에 비해 경매회사의 1만 9238점은 비대칭이다. 김 소장은 “작가가 시장에 처음 작품을 팔 땐 반드시 1차시장을 통한다”는 등 양쪽이 공생할 수 있는 룰이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다. “미술시장이 신뢰를 잃지 않고 건강하고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거다.

한편 국내 미술시장의 1위 작품이 100억원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2017년 기준 평균작품가는 1385만원 선. 전년(1189만원)과 비교해 16.5%가 증가했다. 하지만 그해 총 거래금액과 거래작품 수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받는 평균작품가라 아직은 시장변동과 관련해 크게 유의미하진 않아 보인다. 사실상 2017년(1385만원)과 2016년(1189만원)에 이어 2015년 1374만원, 2014년 1299만원, 2013년 1209만원, 2012년 1748만원 등으로 들쭉날쭉했다.

최근 5년간 미술품 거래액. 국내 미술시장은 2007년 6044억원으로 정점에 오른 뒤 추락을 거듭하다가 2013년 3249억 2700만원으로 바닥을 찍고 나서야 회복세를 타는 중이다. 이 추세를 ‘거래작품 수’도 올라탔다. 최근 8년 새 가장 낮았던 2012년 2만 5195점 이후 2013년 2만 6865점, 2014년 2만 6912점, 2015년 2만 8415점, 2016년 3만 3348점, 2017년 3만 5678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그래픽=문승용 기자).


△꽉 찬 컬렉터 풀 ‘온라인경매’가 풀까

올해 시장전망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코드는 ‘온라인미술시장’이다. 특히 경매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2017년 기준 온라인판매금액은 424억 8900만원으로 전년(248억 800만원)에 비해 71.3%가 늘어났다. 경매횟수도 476회로 전년(391회) 대비 21.7%를 끌어올렸으며 작품판매 수도 1만 5021점으로 전년(1만 2531점)에 비해 19.9%를 늘렸다.

바로 지난해 통계도 무관치 않다. 서울옥션은 한 해 동안 6차례의 메이저경매(홍콩경매 포함) 외에 25차례의 온라인경매를 진행해 1690점 8839만원(평균작품가 532만원)어치를 팔았다. 케이옥션은 좀더 공격적이다. 6차례의 정기경매 외에 59회의 온라인경매를 통해 4940점 151억원(평균작품가 307만원)어치를 팔아낸 거다. 낙찰총액으로만 전년 대비 약 20%가 증가한 것인데, 케이옥션 총 낙찰총액의 21.13%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온라인전략’은 “대중성·접근성을 확보해 이미 꽉 차 있는 컬렉터 풀을 대체하겠다”는 두 경매회사의 복안과 일치한다. 평균 거래작품가 1385억원의 30% 남짓한 작품이 시장확장에 확실한 대안이 될 거란 판단이다. 그렇다고 온라인경매시장에서 팔리는 작품이 무조건 ‘싸다’는 것도 편견이다. 지난해 서울옥션에서 온라인 낙찰가 1·2위를 쓴 작품은 카우스의 ‘무제’(4억 7000만원)와 박수근의 ‘줄넘기’(4억 6000만원), 케이옥션에선 박서보의 ‘묘법 No. 214-85’(4억 5000만원)과 ‘노상: 관상 보는 사람’(3억 5000만원)이 올랐다.

키워드 셋을 포함해 올해 미술시장을 좌우할 중요한 연결고리로 김 소장은 “시장을 움직일 사람”을 꼽는다. “불특정 다수보다 기관·기업·미술관·공인 등 미술시장을 붐업할 수 있는 층에 의한 확장성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미술계 한 인사는 “불황과 무관한 잠재적 성장가능성은 이미 마련한 셈”이라며 “유의미한 지표를 제대로 살려낸다면 미술시장 전환에 결정적인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브론즈 ‘콰란타니아’(1983). 지난해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700만홍콩달러(약 95억원 1400만원)에 팔리며 2018년 국내 경매 낙찰가 1위를 꿰찼다(사진=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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