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 미의 기준 바꾸다]②'뷰티'부터 이영자까지, TV가 달라졌어요

김윤지 기자I 2018.10.16 00:12:00
사진=스튜디오 앤 뉴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얼굴이 바뀌는 여자와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남자. 두 사람은 외형을 뛰어넘는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서로에게 조금씩 끌리기 시작한다.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 미니시리즈 ‘뷰티 인사이드’(극본 임메아리, 연출 송현욱)다. 톱스타와 재벌3세, 드라마에서 익숙한 직업이지만 두 남녀주인공에게 각각 외모에 대한 제한이 주어지면서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로 전개된다. 특히 한 달에 1주일 동안 다른 얼굴로 사는 한세계(서현진 분)와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외모지상주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사진=‘뷰티인사이드’ 방송화면 캡처
이는 지난 9월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와도 맞닿는다. 대학 생활을 배경으로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은 작품이다. 하나의 작은 사회인 그곳에선 외모로 서열이 정해진다. 외모 때문에 우울한 학창시절을 보낸 강미래(임수향 분)는 성형 수술을 통해 예뻐지지만 원래 예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축된다. ‘모태 미녀’ 현수아(조우리 분)는 더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과 위선을 일삼는다. 현실적이면서 섬세한 시선에 시청자들을 공감을 표했다.

방송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방송가에선 “TV에서 못생긴 여자는 아기나 동물 보다 못하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오갔다. 그만큼 미디어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고정된 성 역할을 부각시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랬던 방송 콘텐츠가 최근 들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으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시대 변했지만…“여전한 성역할 고정”

TV 속 성차별은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일부 부부 관찰예능에선 가족과 남편을 위한 여성 연예인의 희생을 자발적인 행복으로 묘사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1일부터 7일까지 지상파 3사,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 예능 프로그램 중 시청률이 높은 33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 성차별적 내용이 성평등적 내용보다 4.6배 많았다. 성차별적 내용은 모두 32건으로,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집안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연예인, 특히 걸그룹 멤버에게 가장 혹독하다는 반응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그룹 멤버는 ‘애교’가 필수 덕목이던 시절도 있었다. 무표정을 짓거나 무뚝뚝한 태도를 보이면 ‘쎈’ 캐릭터로 분류되거나 예의 없는 인물로 낙인이 찍혔다. 1주일 동안 7kg을 감량하기 위해 얼음만 먹은 트와이스 모모, 볶은 병아리콩만 한 끼씩 먹었다는 라붐 솔빈 등 깡마른 몸매를 만들기 위한 다이어트 사연도 늘 존재했다. 이를 숨은 노력으로 포장하지만, 따져보면 가학적인 수준이란 지적도 나온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임에도 미디어 속 걸그룹은 인형처럼 말라야 한다는, 정형화된 미를 좇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사진=‘밥블레스유’ 방송화면 캡처
◇수영복 입은 이영자, 안경 쓴 아나운서

그럼에도 변화는 감지된다. 개그우먼 이영자는 지난 8월 방송한 케이블채널 올리브 ‘밥블레스유’에서 수영복 패션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수영복은 평범했지만, 이를 소비하는 방식은 달랐다. 친근한 모습에 여성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이를 두고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자기 몸 긍정주의), ‘탈(脫)코르셋’(코르셋으로 대변되는 아름다움을 위해 여성을 가두는 편견에서 벗어나자는 메시지) 등 다양한 담론이 오갔다.

연출을 맡은 황인영 PD는 “어떤 의도를 담은 연출은 아니었다”며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몸을 다루는 방식이 관행처럼 굳어졌는데, 그것과 달라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일상의 자신을 사랑하는 당당함으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현주 MBC 아나운서와 걸그룹 에프엑스 엠버도 고정관념을 깬 인물들이다. 임 아나운서는 지난 4월 아침 뉴스에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그만큼 안경은 여자 앵커에게 암묵적 금기였다. 엠버는 자신만의 개성으로 꾸준히 드러내는 여성 연예인이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들은 ‘엠버가 실제론 여성스럽다’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면, 지난 7월 공개된 스포츠브랜드 광고는 엠버만의 스타일을 반영했다. 그는 SNS에 “다른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제 몸을 창피하다고 여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란 글을 게재해 지지를 얻었다.

엠버, 임현주 MBC 아나운서(사진=각 SNS)
◇달라지고 있다…“반성의 목소리”

느리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개그우먼 김숙은 지난달 KBS2 ‘대화의 희열’에서 과거 여성 외모 비하 개그를 한 것을 창피하다고 털어놨다. 가수 에일리는 JTBC ‘히든싱어’에서 “몸무게 49kg 시절, 보기에 좋았지만 제일 우울했다”고 고백했다. “개그의 흐름이 달라졌다. 공부해야 한다”는 김숙, “이제 체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 몸을 사랑한다”는 에일리의 말에 시청자들은 지지를 보냈다. 두 사람의 발언은 스타들과 제작진 모두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재근 대중 문화평론가는 “최근 들어 ‘미투 운동’ 등으로 인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방송가도 느끼기 시작했다”면서 “아직 몇 가지 사례에 그치고 있지만, 이 같은 변화에 호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흘러가면 점점 TV도 전과 다르게 여성과 남성을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대화의 희열’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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