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KDB금융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지난 4월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통일금융’에 대한 의욕적인 구상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통일대박론’에 있어서 정책금융의 ‘맏형’인 산업은행이 통일시대의 금융을 주도하겠다는 의지였다.
홍 회장은 이와 함께 지난 1월 신년사에서는 “산업은행이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올 초부터 산업은행의 역할을 확고하게 정립하고 위상을 더욱 높이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홍 회장의 이러한 구상은 당장의 현안들에 밀려 그동안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우선 최근에는 동부그룹 구조조정 문제에 온 힘을 쏟아야 했다. 홍 회장은 당초 지난해 말 “동부그룹에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상황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자 자율협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포스코의 동부제철 패키지 딜 인수 포기가 발표되기 전날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극비리에 만나 동부제철에 대한 자율협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시장 일각에서는 홍 회장의 책임론이 나오기도 했다. 홍 회장이 동부그룹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무리하게 당진발전과 인천공장을 패키지 딜로 매각하는 방안을 밀어붙였다는 주장이다.
또 홍 회장은 취임 뒤 줄곧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원칙을 내세웠는데 동부그룹 사태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실패 사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홍 회장인 동부그룹 김 회장의 아들 남호 씨의 동부화재 지분을 요구하는 것을 두고서는 동부그룹과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악재’ 속에서 최근 동부발전당진 인수전이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산업은행의 숨통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게 해줬다. 지난 11일 동부발전당진 예비입찰에서 LG상사와 SK가스, GS EPS, 대림산업, 대우건설, 삼탄 등 6곳이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매각을 주관하는 산업은행은 이달 말까지 실사를 거쳐 내달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흥행 성공으로 이번 매각이 동부그룹 자금 사정에 ‘단비’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일각에서는 동부발전당진 인수전 흥행은 패키지딜을 고수한 산업은행이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산업은행 측은 이번 소식을 계기로 동부그룹 위기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기를 바라고 있다. 홍 회장 역시 동부그룹 사태가 잘 해결돼야 본격적으로 본인의 구상을 실현에 옮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홍 회장은 지난 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개발금융기관장 회의에 참석하는 등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와 G20 개발금융기관이 한국의 통일금융 추진에 관심을 갖고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홍 회장은 특히 독일재건은행(KfW)의 울리히 슈뢰더 행장 면담을 갖고 양 기관이 올해 안에 통일금융 공동컨퍼런스를 개최하는데 합의하고 통일금융과 중소기업 지원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통일금융’의 실현을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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