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목멱칼럼]스마트폰, 좀 작작 씁시다

정병묵 기자I 2014.03.28 06:00:00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문송천 교수] 필자가 가까이서 지켜 본 일화다. 홍길동씨(가명)의 아내는 스마트폰이 먹통되는 일이 잦았다. “회사 근처에 수리점이 있는데 수리해다 줄까?” 아내는 그게 좋겠다며 남편에게 휴대폰을 맡기고는 부부는 각자 출근길에 나섰다.

이날 오전, 아내가 회사 유선전화로 홍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스마트폰 잘 있어?” “잘 있지.” 홍씨는 스마트폰을 고친 뒤 퇴근길에 나섰다. 집 번호로 또 전화가 왔다. “내 폰 잘 있어?” 먼저 퇴근한 아내가 또 전화한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어디쯤 왔는지보다 스마트폰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홍씨가 집에 도착하자 마자 아내는 스마트폰부터 챙겼다. 하루종일 받지 못한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중대한 용무는 하나도 없었다. 아내는 스마트폰이 없어 하루종일 불편했다고 투정했다. 시간을 내 고쳐다 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불평만 늘어 놓았다. “불편했다지만 뭐 좋은 점은 없었어?” “있었지. 덕분에 오늘 일을 훨씬 많이 했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릴 수 없으니 회사 일을 더 많이 했다는 이야기다.

남편은 좋은 소리 한마디 못 들은 채 아내에게 또 묻는다. “뭐가 가장 불편했는데.” “모바일 메신저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안 되니 소외감이 생기더라.” 소그룹 내 다른 지인들끼리는 분명히 몇 번씩 수다를 주고 받았을 텐데 자신은 거기서 제외됐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아 그냥 먹통 되더라도 수리 맡기지 말고 계속 쓸 걸 그랬네.” 스마트폰 수리를 제안한 남편을 원망하는 투의 말까지 이어지자 홍 씨는 참을 수 없었다. “시간 쪼개 고쳐다 줬더니 불평만 늘어놓나!” 홍씨가 폭발했고 부부는 그날 한 바탕 부부싸움을 치렀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전화 중독’이라는 현상은 없었다.

우리는 이 부부의 일화에서 스마트폰의 두 가지 어두운 면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스마트폰은 사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둘째 SNS 커뮤니케이션에 중독돼 오히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소홀하게 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스마트 기기를 각자 들고 할 일을 하는 가족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듯 스마트폰은 점점 인간관계를 방해하고 있다.

다시 부부 얘기로 돌아가 보자. 부부싸움 후 아내는 느낀 바가 있는지 전과 달라졌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취침하기 전 핸드백 속에 넣어버렸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스마트폰 중독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내가 ‘자기제어 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수고했다’는 좋은 소리 한마디 듣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났다.

필자가 자체적으로 평가한 바, 홍씨 부인은 중독지수가 15 정도(100 만점)다. 그나마 본인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는 단계가 50인데 이 이상이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중독에 걸려 산다. 다만 중증 중독으로 가는 길목에 자신이 서있는 지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

필자는 버스를 탈 때 일부러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 맨 뒷자리에 앉는데, 요새는 승객 열이면 열 다 목을 빼고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 청소년들은 모바일 게임에 빠져 연로하신 할머니가 힘들게 서 있는 줄도 모른다.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은 한정돼 있고 뇌도 이따금 쉬어줘야 한다. 가만히 버스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거나 집에서 멍하니 휴식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의 여유마저 스마트폰이 점점 앗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