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가 집에 도착하자 마자 아내는 스마트폰부터 챙겼다. 하루종일 받지 못한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중대한 용무는 하나도 없었다. 아내는 스마트폰이 없어 하루종일 불편했다고 투정했다. 시간을 내 고쳐다 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불평만 늘어 놓았다. “불편했다지만 뭐 좋은 점은 없었어?” “있었지. 덕분에 오늘 일을 훨씬 많이 했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릴 수 없으니 회사 일을 더 많이 했다는 이야기다.
남편은 좋은 소리 한마디 못 들은 채 아내에게 또 묻는다. “뭐가 가장 불편했는데.” “모바일 메신저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안 되니 소외감이 생기더라.” 소그룹 내 다른 지인들끼리는 분명히 몇 번씩 수다를 주고 받았을 텐데 자신은 거기서 제외됐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아 그냥 먹통 되더라도 수리 맡기지 말고 계속 쓸 걸 그랬네.” 스마트폰 수리를 제안한 남편을 원망하는 투의 말까지 이어지자 홍 씨는 참을 수 없었다. “시간 쪼개 고쳐다 줬더니 불평만 늘어놓나!” 홍씨가 폭발했고 부부는 그날 한 바탕 부부싸움을 치렀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전화 중독’이라는 현상은 없었다.
우리는 이 부부의 일화에서 스마트폰의 두 가지 어두운 면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스마트폰은 사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둘째 SNS 커뮤니케이션에 중독돼 오히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소홀하게 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스마트 기기를 각자 들고 할 일을 하는 가족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듯 스마트폰은 점점 인간관계를 방해하고 있다.
다시 부부 얘기로 돌아가 보자. 부부싸움 후 아내는 느낀 바가 있는지 전과 달라졌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취침하기 전 핸드백 속에 넣어버렸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스마트폰 중독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내가 ‘자기제어 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수고했다’는 좋은 소리 한마디 듣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났다.
필자가 자체적으로 평가한 바, 홍씨 부인은 중독지수가 15 정도(100 만점)다. 그나마 본인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는 단계가 50인데 이 이상이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중독에 걸려 산다. 다만 중증 중독으로 가는 길목에 자신이 서있는 지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
필자는 버스를 탈 때 일부러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 맨 뒷자리에 앉는데, 요새는 승객 열이면 열 다 목을 빼고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 청소년들은 모바일 게임에 빠져 연로하신 할머니가 힘들게 서 있는 줄도 모른다.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은 한정돼 있고 뇌도 이따금 쉬어줘야 한다. 가만히 버스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거나 집에서 멍하니 휴식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의 여유마저 스마트폰이 점점 앗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