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영도다리 건너니 벽에 핀 '봄'을 만났다, '부산 영도'

강경록 기자I 2014.03.11 06:00:00

부산의 산토리니 ''흰여울 문화마을
추억을 들어올리다. ''부산 영도다리''

흰여울 문화마을의 흰여울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좁은 골목길 담장에는 알록달록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부산 영도. 섬의 옛 이름은 절영도였다. 끊어질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썼는데 나중에 ‘절’자가 떨어져 나갔다. 사연은 이렇다. 신라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는 나라서 직접 관장하는 말 방목장이 있었다. 방목되던 말 가운데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천리마도 있었다. 말이 어찌나 빨랐던지 그림자가 따르지 못하고 곧잘 끊어졌단다. 그래서 절영도였단다. 그런 영도에도 봄은 소리 없이 와 있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한결 수굿해졌고, 바다의 색깔마저 봄의 기운을 닮은 듯 따스했다.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핀 붉은 동백꽃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하얗다 못해 순결한 매화 또한 거리 곳곳을 메우기 시작했다. 남녘의 봄은 그렇게 이미 와 있었다. 얼마 전 다시 도개(跳開·큰 배가 지나갈 때 다리 상판 일부를 들어 올리는 것)한 영도다리까지 수많은 명소를 품은 영도를 찾았다. 하지만 이 모두를 제쳐놓고 길손의 발길을 잡은 것은 시간도 멈춰 쉬어가는 마을, 흰여울 문화마을이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국밥집 아주머니를 기다리던 곳은 이곳 흰여울 문화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부산의 산토리니 ‘흰여울 문화마을’

부산엔 유독 판자촌이 많다. 개항 후 일제에 의해 항만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과 한국전쟁 발발로 갈 길을 잃은 피란민들이 모여살 던 곳이라서다. 부산 영도구 절영로 2번지 송도삼거리 인근 ‘흰여울 문화마을’도 그랬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옹기종기 작은 집들이 모여 있다. 한국전쟁 중에 피란민들이 주로 살던 동네다. 작은 공간에 많은 집들이 모였기 때문일까. 한 사람 정도 겨우 빠져나갈 골목길들과 미니어처같은 작은 집, 그리고 ‘어떻게 저기에 집이 생겼지’라고 의문이 드는 집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현재는 저소득층 가정과 폐·공가들이 밀집돼 있어 슬럼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2011년 부산시는 이런 마을을 재개발하려다 계획을 바꿔 일부만 개발하고 옛 정취를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이송도 삼거리 근처 절영로 옆, 폭 1m 남짓한 샛길에서부터 흰여울길은 시작된다. 벽에 ‘흰여울길’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하늘색 바탕에 하얀구름이 그려진 벽화가 맞이하는 샛길로 30m가량 내려가면 흰여울 문화마을이 나온다. 그 앞 절벽 아래로 부산 바다가 펼쳐진다. 여기가 흰여울길이다.

평일임에도 알음알음 찾는 방문객들이 제법 많다.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며 널리 알려졌고, 영도대교 도개로 대교와 주변 관광지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덩달아 발길이 잦아졌다. 부산의 옛 모습을 간직한 흰여울 문화마을과 흰여울길 옆으로 펼쳐진 부산 바다는 아름다운 풍광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여기에다가 골목 틈새로 바라보이는 강렬한 바다, 오래된 돌계단에 앉은 하얀 꽃 그림, 기왓장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강아지 얼굴까지.

어른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 담장이 얼추 1km는 이어졌다. 그 담장이 선을 긋지 않았다면 집들은 바다로 더 내려갔을 테다. 오래된 전봇대에서 기어나온 전깃줄은 팽팽한 하늘에 느릿느릿 선을 그렸다. 담장 너머 바다에선 큰 배들 사이로 고기잡이배 한 척이 길고 하얀 물금을 그렸다 지웠다. 아침시간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하늘에는 분홍빛 잔상이 남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지점에 길게 누운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완만한 오르막길 왼편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오른쪽으로 가파른 절벽과 해안산책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다. 대부분 집들은 폭이 1m 정도인 샛길만을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샛길로 들어서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로가 이어진다. 그 길 위에 점점이 박힌 사람들. 바다로부터 뱃고동 소리가 더해질 때 그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길의 중간쯤에 이르자 벽화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강렬한 색감의 꽃밭과 뛰노는 아이들이 그려진 벽화는 오래된 마을에 산뜻한 생기를 안긴다. 벽화집 중엔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국밥집 아주머니를 기다리는 곳도 있다. 젊은 연인들은 송강호가 앉았던 자리에서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 없는 모습이다. 어느새 흰여울길의 끝자락. 거기엔 도착점인 백련사 버스정류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과 절영해안산책로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조금 더 바다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해안산책로로 내려가면 된다.

상판을 번쩍 들어 올린 영도대교. 도개 장면은 매일 낮 12시부터 15분간 펼쳐진다.
◇추억을 들어올리다 ‘영도대교’

‘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드냐. …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지난 7일 낮 12시쯤. 사이렌 경고음이 울린 직후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울려 퍼졌다. 때를 맞춰 다리 상판 일부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운집한 수백명의 관광객들은 짧은 탄식과 함께 일제히 사진을 찍어댄다. 도개현장을 보기 위해 영도대교 아랫길 골목과 다리 옆 통행로 등에 구름떼처럼 몰려든 관광객이다. 부산 중구 영도대교 도개현장의 모습이다.

다리 하나 들어 올리는 게 뭐 대수겠나 싶겠지만 영도대교는 다르다. 사연이 많은 탓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개교인 영도다리는 일본강점기인 1934년 11월 23일 개통됐다. 영도에 조선소를 지으려던 일제는 물류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 교량이 필요했다. 한데 해운업자들의 반대가 심했다. 다리가 서면 큰 배가 부산항에 들어갈 수 없어 우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절충안으로 나온 게 도개교였다. 당시 부산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6만여명이 몰려 다리 상판이 올라가는 장면을 지켜봤다고 한다. 공식 명칭은 ‘부산대교’. 1980년 바로 옆에 새 부산대교가 생기면서 영도대교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줄곧 ‘영도다리’라고 불렀다.

한국전쟁 중엔 한 맺힌 공간이었다. 1951년 1·4후퇴 때 이북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남으로 향했다. 부산까지 쫓겨온 이들은 혹여나 전쟁통에 가족을 잃어버리면 당시 가장 많이 알려졌던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래도 기약은 했지만 피란통에 “영도다리에서 다시 만나자”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가족과의 재회에 실패하고 팍팍한 피란살이를 견디지 못한 이들은 종종 영도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피란민의 애절한 사연들은 그렇게 다리 난간에 맺혔다. 다리 밑 판자촌엔 가족의 안위를 궁금해하는 피란민들을 상대로 점집도 생겨났다. 한창 때는 8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도개는 1966년 멈췄다. 교량 노후화, 교통량 증가 등이 이유였다. 영도로 들어가는 상수도관이 부착되면서 다리는 도개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동시에 철거계획도 추진됐다. 그러다 예전과 같은 모양의 도개교를 새로 짓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지난해 11월 27일 새 다리가 개통됐다. 왕복 4차선이던 폭이 6차선으로 넓어졌고, 도개 각도가 최대 80도에서 75도로 다소 줄어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예전과 거의 비슷하다. 철거된 옛 다리의 부속시설들은 기념관이 세워지면 전시될 예정이다. 도개는 하루 한 차례 낮 12시부터 약 15분간 진행된다. 영도와 자갈치시장을 오갔던 도선도 올해 부활될 예정이다.

영도대교 아래 옛 건물에 다닥다닥 들어찬 점집들. 한창 때는 무려 80여개의 점집들이 성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금새 무너질 듯한 낡고 좁은 점집들이 서너군데 영업을 하고 있다.
◇여행메모

△가는 길: 영도다리 건너 영도경찰서 뒤쪽 항만으로 빠지면 남항동 일대다. 남항방파제를 따라가면 절영해안산책로 시작점이다. 종착지인 중리해변까지는 3㎞.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 안쪽에 돌아볼 수 있다. 산책로 들머리 위쪽이 흰여울 문화마을이다.

△잠잘 곳: 부산롯데호텔이 서면에 있다. 시내 한가운데 있어 부산의 동서남북을 이동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여기엔 여행자를 위한 특별한 상품이 있다. 부산 체험 관광 프로그램 ‘L.T.E ROAD’가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이드가 투어의 시작부
터 끝까지 동행하고, 셔틀버스도 운행해 고객은 몸만 실으면 그만이다. 호텔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1실 최대 4인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051-810-1100.

△먹을 곳: 부산에 간다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들이 있다. 돼지국밥, 부산밀면, 생태탕이다. 돼지국밥은 양산왕돼지국밥(051-781-2722)이 유명하다. 특유의 돼지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먹기에 부담이 없다, 부산밀면은 부산역 맞은편의 초량밀면(051-462-1575)을 추천한다. 시원하고 깔끔한 맛은 기본이요, 주머니 가벼운 이들을 위해 값도 싸다. 냉면과는 또 다른 별미다. 점심시간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영도 쪽엔 복어찜과 생태탕이 유명한 일번지복국(051-416-5231)이 유명하다.

△여행팁=부산을 처음 여행한다면 교통수단을 잘 선택하는 것이 좋다. 시내 곳곳을 두루 살펴보고 싶다면 시티투어버스(1688-0098)를 이용하자.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만큼 이동 또한 편리하다. 하지만 가족이나 연인, 친구끼리 부산을 여행한다면 등대콜서비스(051-600-1000)를 이용하는 게 좋다. 부산의 교통체증과 주차난, 지리 등을 생각한다면 최적의 교통수단이다. 택시기사의 친절한 안내는 덤. 여성들을 위해 숙소까지 안전귀가 서비스 등을 갖추고 있다. 1시간당 2만원.

해운대 한화리조트(2901호)에서 바라본 부산의 야경. 해가 저물고 저녁 8시경이면 부산의 앞바다는 환하게 빛을 낸다.
영도대교 아래 옛 건물에 다닥다닥 들어찬 점집들. 한창 때는 무려 80여개의 점집들이 성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금새 무너질 듯한 낡고 좁은 점집들이 서너군데 영업을 하고 있다.
상판을 번쩍 들어 올린 영도대교. 도개 장면은 매일 낮 12시부터 15분간 펼쳐진다.
절영해안산책로에서 흰여울문화마을로 올라가는 계단. 가파른 계단만큼이나 언덕 위의 마을 또한 높이 자리하고 있다.
소위 ‘천국의 계단’이라 부리는 무지개 계단. 알록달록 무지개 색감이 정겹기도 하지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이의 모습은 힘에 부친듯 가픈 숨을 내쉬게 된다.
흰여울 문화마을 끝자락 즈음에 피어 있는 매화. 새하얀 매화나무의 빛깔이 따스한 햇살을 받아 더 하얗게 물들었다.
해변을 따라 형성된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절영해안산책로.
절영해안산책로의 해변을 따라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이 걷는 재미를 더 한다.
흰여울 문화마을 아래에 펼쳐진 해안가를 따라 만들어진 절영해안산책로의 무지개다리. 알록달록한 계단이 인상적이다.
흰여울길 시작점에서 바라본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 파란바다와 하늘, 그리고 산 아래 동네마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같다.
늦은 오후 다시 찾은 흰여울길의 벽화는 넘어가는 해로 인해 더 진하게 채색되어진다.
흰여울길 음표를 그려놓은 벽화. 알록달록한 집들과 노란 담장. 그 속에 까만 음표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하다.
흰여울길의 좁은 골목. 1m도 채 되지 않은 좁은 골목 사이로 빛이 들어가고 있다.
흰여울 문화마을의 흰여울길 입구. 바다를 바라보고 벼랑끝에 서 있는 이 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그 자체로 시간이 멈춰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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