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이데일리 김경민 특파원] 춘제(春節)는 중국의 가장 큰 명절로 음력 정월 초하룻날, 설을 일컫는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때 서력기원을 정하면서 이날을 춘제로 부르기 시작했고 1949년에 공식적으로 서력기원을 채택해 양력 1월1일은 원단, 음력 정월 초하루는 춘제로 굳어졌다.
행사도 최대 명절답게 다양하다. 집집이 대문에 춘련(春聯)이라는 대구의 글귀(대련)를 써서 붙이고 방 안의 벽에는 잉어를 안고 있는 아기 그림과 같은 연화(年畵)를 붙이거나 걸어 놓는다. 대문에 ‘복(福)’ 자(字)를 거꾸로 붙여 놓는 풍습도 있는데 중국어로 읽으면 ‘복이 들어온다(福到了)’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가족이 설 전날 밤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으며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아침 해가 솟으면 일제히 폭죽을 터뜨리며 집안에 있는 악귀를 쫓는다.
그런데 올해 명절 분위기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변화는 폭죽이다. 나쁜 귀신을 쫓는 도구로 쓰이는 폭죽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중국 사회에서 중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구다. 한 통에 3000위안(54만원)이 넘는 폭죽이 내놓기가 무섭게 팔렸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진열대에 그득그득 쌓이고 있다. 고가의 폭죽이 과소비 주범으로 꼽히면서 된서리를 맞고 있다.
게다가 스모그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베이징 등 각 지방 정부에서 폭죽 구매량을 제한하고 있다. 폭죽이 터질 때 소리도 소리지만 까만 재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공기 오염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베이징시는 올해부터 스모그 홍색 경보와 황색경보가 발령되는 경우 폭죽 소매점의 판매행위를 금지했다. 또 개인이 여러 차례 폭죽을 구매하거나 한 꺼번에 다섯 상자 이상 폭죽을 구매할 때 반드시 신분정보 등을 공안당국에 등록해야 하는 규정도 이번 춘제부터 처음 시행한다.
비단 폭죽 소리만 끊긴 것이 아니다. 바이주(白酒) 판매량도 급감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주류 소매상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새해 들어 고급 바이주 마오타이와 우량예를 한 병도 팔지 못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값비싼 술의 판매가 줄어드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반부패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취임 직후부터 공직사회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3공(公) 경비(관용차·접대·출장)’ 를 줄이는 조치를 취해 부패척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중국 명품 시장의 올해 성장률은 2%에 불과하다. 지난 2012년에만 해도 7%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지난해부터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베이징의 한 기업인은 “예전 같으면 명절 때 공무원들에게 고급 술이나 고가의 선물을 하며 사실상 뇌물을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공무원들이 저렴한 선물을 하거나 아예 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런 변화에 일각에서는 불안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기업들의 춘제 특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또 한 편에서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부정부패가 과연 뿌리 뽑힐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우려는 다소 과도해 보인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지갑’이다. 세계 곳곳에서 이번 춘제 연휴 때 중국인 지갑을 열기 위해 갖가지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중국이 이제 질적 성장의 토대를 닦고 있다. 그동안 과소비나 과시성 소비 성향이 문제였던 것은 사실이다. 단번에 변화가 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춘제에 폭죽 소리가 얼마나 들리는지에 귀를 기울여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