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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설국열차' 속 과학은?

김혜미 기자I 2013.10.27 09:00:00

26일 국립과천과학관 과학토크콘서트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살포한 화학물질 때문에 되레 빙하기가 찾아오고, 특정 열차에 탄 생존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설국열차. 지난 여름 개봉한 이 영화는 10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으며 올해 흥행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공상과학(SF) 영화다. SF영화는 어느 정도 과장은 있더라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판타지 영화와는 다르다. 설국열차는 기후변화 문제에서부터 화학물질 살포, 영구동력엔진 등 과학에 기초하고 있다.

원작만화의 탄생지인 프랑스 개봉을 나흘 앞둔 26일 봉 감독이 국립과천과학관 과학토크콘서트에서 초·중·고교생들과 만났다. 봉 감독과 과학자문을 맡은 김보영 작가가 이날 털어놓은 ‘설국열차’ 속 과학원리와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①설국열차를 찍게 된 이유는

-2005년에 서점에서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만화책 표지를 봤다. 제목이 열차였다. 남자들이 유치하리만치 열차에 대해 갖는 로망같은 게 나도 있었고, 열차에서 뭘 하는 것인가 해서 봤다. 첫 장을 펼치니 지구가 멸망해 온통 눈으로 덮여있는 가운데 기차가 아름답게 지나가고 있었고, 그 안에 생존자들이 바글거렸다. 거기서 매혹이 됐다. ‘종말 이후 생존자들이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다’는 점이 대단히 황당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②기차를 움직이는 ‘영구동력엔진’은 어떻게 움직이나

-미국에서 1970년대 펜실베니아호라는 핵 잠수함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핵발전소처럼 원자로가 있었다. 핵 에너지를 이용해 잠수함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 잠수함은 약 20년 이상 연료를 충전하지 않고 핵 에너지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기차가 17년 동안 계속 달렸다는 설정인데, 자세히 보면 엔진실 디자인도 핵발전소를 연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실 영화는 ‘기차가 영원하지 않으며 어느 시점에 멈출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기차 안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영원한 엔진’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세뇌시키지만, 사실은 엔진이 마모될 것이고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촬영했다. 자연의 세계가 오히려 더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조금씩 지구가 회복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마지막에 북극곰이 등장한 것도 그런 의미다.

③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CW-7은 전세계적으로 살포된 것인가. 철자의 뜻은 무엇인가

-영화 도입부에 라디오에서 ‘전세계 공항에서 CW-7을 살포하기 위한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몇 개국이라고 정하지는 않았지만 생중계 장면이 나오는 나라에서 살포가 이뤄지는 것이다. 잠깐 지나가는 내용 중에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란 내용이 나오는데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해 이미 논란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다만 공기중에 살포돼서 성층권에 올라가면 대류현상으로 인해 전세계에 확산될 수 있다.

CW-7은 ‘추운 날씨(Cold Weather)’의 약자로 직접 지었다. 일각에선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아니다. 그저 발음도 유려하고 해서 정한 것 뿐이다.

26일 과학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과천과학관 제공)
④열차가 얼음을 부수고 지나가거나 레일 위 얼음을 밟고 지나간다. 매년 그렇게 되면 열차가 탈선되거나 손상되지는 않나.

-그 부분이 묘사된 곳이 바로 예카테리나 브릿지인데 1년에 한번 씩 지구를 순환하는 열차가 새해에 지나가는 다리다. 영화에서도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주의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조마조마해한다. 이를테면 고속도로에서 ‘낙석주의’ 표지판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실은 철로에 얼음이 얼어붙어있다는 것 자체가 눈이 녹고 있다는 의미다. 눈사태가 보통 눈이 녹는 봄에 일어나는 것처럼, 눈이 녹아 흘러내리기 때문에 얼음이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⑤SF영화를 촬영할 때 과학적 엄밀함이 부담이 되나.

-그렇다. SF영화에는 최소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하므로 조심스럽다. 하지만 너무 조심스러워 하다보면 상상력이 위축될 소지도 있다. 그래서 자문을 구해 영구동력엔진이라든가 기후변화 이런 부분을 다뤘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 정부가 개막식 날씨를 맑게 하기 위해 인공강우제를 직전 일주일간 살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최소한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관객들에게 세밀하게 설명해주지 못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⑥기차에서 도중에 내렸다가 동사한 7명은 어떻게 내렸나.

-문이 얼어붙어있어서 열리지도 않고, 유리도 쉽게 깨지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인데 어떻게 내렸느냐가 궁금할 것이다. 두 달만 시간을 주면 구상해보겠다.(웃음)

⑦기차가 1년에 43만8000km를 간다고 보면 열차의 속도가 시속 50km란 계산이 나온다.

-맞다. 1년에 한 바퀴라는 의미가 내게는 굉장히 중요했다. 한 바퀴를 돌면 크리스마스엔 어느 지점, 할로윈 데이엔 어느 지점, 이런 식으로 기차 자체가 하나의 시계가 되는 것이다. 1분 후나 다음 시간에 기차가 어느 곳을 지날지를 알게 되면서 나오는 서스펜스 장면, 그런 것들이 중요했다.

⑧배우 고아성이 연기한 ‘요나’는 정말 초능력자인가

-원래는 ‘나는 소리를 본다(I see sound)’란 대사가 있었는데 영화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다. 요나는 사실 고도의 청력을 가진 아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요나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덜컹거렸다’는 내레이션을 하는데, 이 같은 뜻을 내포한 것으로 열차 안에서 태어나 자란 ‘열차세대’로서 가질 수 있는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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