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승형 사회부장]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1983년작 ‘애정의 조건(Terms of Endearment)’은 사랑과 소통에 관한 영화다. 영화 원제의 ‘terms’는 ‘조건’으로 번역됐는데, 굳이 따지자면 ‘조건’이란 말 속엔 ‘표현’이나 ‘말’이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다시 말해 ‘애정 표현’ 혹은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어라 하겠다.
이 영화에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못한 채 날선 말을 주고 받으며 결국 상처를 주고야 마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매일 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 더 아픈 말로 되갚는 딸. 가난한 현실을 엄마의 탓으로만 돌리는 어린 아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말’만 쏟아 내는 가족들. 이들의 가슴에는 깊은 골이 패인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암투병을 하던 20대 주부 엠마(데브라 윙어 분)가 마지막을 예감하고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은 영화사에서 가장 슬픈 엔딩신으로 꼽힌다. 특히 사춘기 아들 토미에게 전하는 말은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난 네가 엄마를 좋아하는 거 알아. 지난 몇 년 동안 너가 날 싫어하는 척 했던 걸 알아. 난 널 정말 사랑해.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널 사랑해. 앞으로 몇 년이 지나서 내가 네 주위에서 얼쩡거리거나 너를 짜증나게 하지 않게 되면…그때는…우리가 돈이 한 푼도 없었던 때에 네게 야구 글러브를 사준 걸 떠올려줘. 네게 동화책을 읽어줬던 일을 기억해줘. 그런 많은 일들을 기억해줘. 그러면 너도 날 사랑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어쩌면 넌 굉장히 슬퍼질거야. 왜냐하면 나한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괜찮아. 난 너가 날 사랑하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슬퍼하거나 자책하지마. 알겠지?”
소통 부재는 애정 결핍을 쌓는다. 연인들이 흔히 말하는 ‘둘이 있어도 외롭다’는 말은 쌍방향 대화가 단절됐거나 어긋난 탓이다. 둘 사이의 문제를 풀려고 해도 대화할 상대가 없다면, 대화할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훗날 후회를 남긴다. 떠나는 엠마는 남겨진 토미가 후회할 것을 염려했다.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들 사이에서도 ‘말’이 이토록 중요한데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정치인들은 오죽하랴. 일주일 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대국민 담화를 통해 야당을 격하게 몰아세웠다. 결연한 표정과 강경한 어조로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를 비판하며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이날 담화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의 ‘화’에 일견 공감을 표하면서도 그 소통 방식과 태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앞서 새로운 총리와 장관을 뽑는 과정에서 밀봉인사니, 불통 인사니 하는 비판이 나온 터라 그 우려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애정을 느끼게 하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노의 말, 역정의 말이었다. 절제의 말, 포용의 말이 아니었다.
올바른 정치는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야당을 비롯한 국회는 국민들의 대표들이 모인 곳이다. 자기 말만 옳다하고 남의 말을 묵살하는 것은 더 큰 갈등만 일으킬 뿐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대통령의 담화에 비난 일색으로 반응했다. 담화 이후 문제는 더 꼬였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골은 더 깊어졌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새 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요즘 정치판의 ‘불통’을 또다시 확인하며 체념하고 있다. 반복되는 다툼은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애정이 완전히 식었다고 판단되면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때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엠마의 사랑은 이제 떠나고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