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정일 기자] "국내 철강업계는 수입 철강제품과 가격으로도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있습니다. 다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어 전체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네요." (냉연 제조 업체 관계자)
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간주한다면 철강은 가장 근간이 되는 소위 산업의 `쌀`로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1차 먹이사슬 격인 철강업계의 최근 인식은 위기감 그 자체다.
최근 철강업계 인사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위기`다. 과거에도 가격인상 시점만 되면 종종 나오는 말이었지만 이번만은 `진짜`라고 입을 모은다.
전기료와 철광석 등 원재료 값이 계속 오르는데 반해, 철강을 가장 많이 쓰는 조선업계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과 일본 철강제품이 끝없이 밀려 들어오니 그렇다. 중국철강협회에서 연말 중국 철강생산 능력은 9억 톤에 달하는 데 반해 수요량은 2억2000만 톤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실제로 포스코(005490)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4.2%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현대제철(004020)도 1분기 1566억원(전년 동기 49% 감소)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중견 철강업체인 미주제강은 최근 자금압박을 버티지 못해 부도를 냈고 동국제강도 1개 공장을 가동 중단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외부적 요인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철강업계 내부에도 또 하나의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 업계에서는 일본과 중국 산 철강제품의 덤핑 판매 정황을 파악하고 열연과 냉연 등 각 제품군 별로 반덤핑 제소 등의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 그러면서도 철강 대기업들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가격 인상 혹은 할인률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반대로 원가 부담에 시달리는 중소 철강 가공업계과 유통업계에서는 국산 제품의 가격 압박에 대한 대안으로 수입 활용 비율을 늘리고 있다. 이 같은 미묘한 이해관계로 인해 업계의 목소리는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업계 관계자는 열연을 생산하는 대형 철강업체에서는 아직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형 철강업계에서는 중소 가공·유통 회사들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수입산을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수십년 간 쌓아온 생태계의 한 축이 무너진다면 다른 쪽도 무너진다는 점은 상식에 가깝다.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살려면 작은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철강산업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뜻을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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