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은 반으로, 넉살은 두 배로[유영만의 절반의 철학]

최은영 기자I 2024.12.23 05:00:00

유영만 지식생태학자·한양대 교수

[유영만 지식생태학자·한양대 교수]뱃살은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군더더기 살, 군살이다. 뱃살은 다른 사람에게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망신살이다. 세월의 흐름으로 생긴 인생의 내공은 주름살로 가지만 식탐과 운동부족이 만든 합작품은 상반신과 하반신에 걸쳐 있는 무책임한 비무장 지대에서 비만으로 살아간다. 복부비만은 몸집을 무겁게 만들어 태만을 친구로 불러들인다. 복부비만은 태만과 함께 출렁이는 지방의 바다에서 소리 없는 파도소리 들으며 24시간 잠복근무 중이다. 뱃살은 자기관리를 하지 못한 게으름의 상징이다. 배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먹고 움직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제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먹은 칼로리만큼 운동이나 이동으로 소비하지 않으면 먹는 게 남아서 내장 지방으로 축적될 뿐이다.

움직임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도 결정한다. 뱃살이 출렁이기 전에 사생결단, 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당신의 건강 백세는 질병 백세로 반드시 바뀐다. 뱃살은 모든 건강의 적신호를 내장에 내장지방으로 축적한 산물이다. 내장지방에 축적된 그동안 먹은 것의 잔해들은 온몸 구석구석으로 보내지지 않고 뱃살에 고스란히 남아 출렁이는 지방 왕국을 만드는 건축 재료로 활용된다. 뱃살은 염증지수를 높이는 물질을 생산하고 고혈압이나 당뇨를 비롯한 모든 성인병의 온상으로 작용한다. 뱃살은 세월이 가져다준 나잇살이 아니다. 뱃살은 과도한 음주와 탐식, 운동부족이 만든 사회역사적 합작품이다. 뱃살은 당신의 잘못된 식습관이 만든 탐욕의 증표이며 삶을 얼룩지게 만드는 구김살이다.

행복은 허리둘레에 반비례하고 허벅지 두께에 정비례한다. 중년 이후 행복해지고 싶으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것이 뱃살 빼기다. 뱃살은 살살 빼기의 대상이 아니라 초전박살 대상이다. 지금 당장 유산소 운동을 비롯한 뱃살빼기 운동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노화는 가속화하고 삶의 질은 현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더 이상 엄살 부릴 시간이 없다. 지금 가장 먼저 불태워야 할 것은 굳은살로 가기 전에 뱃살에 포진된 내장 지방이다. 그래야 건강의 적신호를 청신호로 바꿀 수 있다. 몸매가 망가지면 몸뻬 바지를 입어야 한다.

‘뱃살’은 건강에 안 좋지만 ‘넉살’과 ‘익살’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데 매우 필요한 ‘살’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절대 긍정으로 웃어넘길 줄 아는 ‘살’이 넉살이다. 넉살 좋은 사람에게 화가 난다고 침을 뱉을 수 없고 야단을 칠 수가 없다. 화를 내고 야단을 치려는 순간 그 넉살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넉살에 비해 익살은 유쾌한 위트와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어젖히는 ‘살’이다. 넉살이 손쓸 틈을 주지 않고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든다면 익살은 그래도 여유를 갖고 웃을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유쾌함과 통쾌함을 가져다준다.

넉살과 익살이 없으면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엄살’도 있다. 엄살이 진정성이나 진실함을 근간으로 발휘되지 않고 지나치게 과장되면 애먼 사살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엄살은 겸손한 가운데 발휘해야 할 마지막 화살이다. 필요할 때는 자신을 낮추고 무리하게 도전할 필요가 없을 때 엄살을 부려도 된다. 엄살을 부리는 동안 생각지도 못하게 위기나 딜레마 상황이 시간과 더불어 넘어간다.

혼돈의 시대, 불확실성의 바다를 건너는 방법은 뱃살은 절반으로 줄이고 넉살과 익살은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더욱 필요한 능력은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 유머감각이다. 실력과 더불어 유머를 갖춘 사람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자기편으로 만들 ‘필살기’(必殺技)를 갖춘 셈이다. 유머가 부르는 재미는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통렬한 깨달음의 뒤통수를 맞았을 때 찾아온다. 의외성과 기대 저버림에서 재미가 나온다. 유머는 한바탕의 웃음이 아니다. 틀에 박힌 일상을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살펴보면서 본질을 꿰뚫는 직관과 더불어 뜻밖의 통찰을 줄 때 일어난다. 유머는 기대를 저버릴 때 폭발한다. 예를 들면 “사과 열 개 중에 세 개 먹으면 몇 개 남을까요”라는 물음에 7개라고 하면 아무도 웃지 않는다. 기대에 부응한 논리적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학생의 대답, “세 개 남는다. 왜냐하면 먹는 게 남는 거니까요.” 대답을 듣는 순간 폭소가 터진다. 왜냐하면 기대를 망가뜨린 뜻밖의 대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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