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봄’의 흥행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랜만에 1000만명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나왔습니다. 모두 다 아시다시피 영화 ‘서울의봄’의 배경은 12·12 군사 반란입니다.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고 사실상 모든 실권을 가져옵니다. 명백한 쿠데타였습니다. 이후 다음 해인 1980년 5월 17일 이들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결국 다음 날인 5월 18일 광주에서는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같은 해 8월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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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전두광의 말처럼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으로 처벌할 수 없을까요? 약 30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2·12 군사 반란의 피해자였던 정승화 전 총장 등은 1993년 7월 전 전 대통령 등 군사 반란을 주도했던 34명을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이후 1994년 5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들 역시 전 전 대통령 등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이후인 1993년 3월 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하고 국회에서는 5공 청문회가 열리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검찰은 1994년 10월 29일 12·12 군사 반란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서울지검은 ‘명백한 군사반란’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국력 소모를 이유로 기소유예를 결정했죠. 당시 검찰은 “12·12는 소장 군부세력 리더였던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제거함으로써 군내 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사전 계획 하에 실행한 군사반란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다만 “이들을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재론되는 등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가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1995년 7월 18일 5·18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립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당시 검찰은 ‘정권 창출 과정에서 취한 행위로 새로운 헌법질서를 만드는 정치 행위이기 때문에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당시 차장검사실에서 진행된 백브리핑에서 장윤석 공안1부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대해 장 부장은 형법이론으로 이를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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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민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5·18 관련 단체는 상경 시위를 벌이는 등 범국민청원운동에 들어갔고 대학생들은 당시 야당이던 민자당 당사로 가서 돌을 던지며 크게 항의했습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재수사를 강력히 지시했고 국회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재수사를 결정했고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12·12 및 5·18 관련자를 구속기소했습니다. 1심의 판결은 전 전 대통령 ‘사형’, 노 전 대통령 ‘22년 6개월형’이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정 당시 계엄사령관을 사전 재가 없이 체포한 것은 명백한 반란죄라고 판시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전두환은 수괴로서 군 병력을 동원해 12·12와 5·17, 5·18을 일으켜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법정최고형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1심의 판단은 2심에서 감형됐습니다. 2심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에 대해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징역 17년’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감형의 이유로 ‘6.29 선언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한 점’ 등을 꼽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1987년 6·29 선언을 국헌문란의 폭동 종료 시기로 판단해 제5공화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법원은 1997년 4월 17일 전원합의체를 열고 이같은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 왔더라도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해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 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의 헌법에서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명백한 판단인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있던 날부터 약 8개월 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등 25명은 모두 사면됐습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대국민 통합 차원에서 사면을 제안했고 김 당시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출소한 전 전 대통령은 기자들을 만나 아무런 사과의 말 없이 “절대 이런 곳에 오지 말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났습니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을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다 2021년 11월, 922억원의 추징금을 남기고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