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차일피일 미룬 출생통보제 도입, 늑장 대응 또 할 건가

논설 위원I 2023.06.26 05:00:00
미신고 출생아에 관한 감사원의 최근 발표는 충격적이다.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의료기관에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미신고 영·유아가 2236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의료기관 이외의 장소에서 출생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미신고 상태의 아이들은 국가나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살해나 학대, 유기, 불법입양 등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마침 그 전날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살해하고 시신을 냉장고에 몇 년간 숨겨두었던 30대 친모가 경찰에 체포돼 충격이 더했다. 개탄하는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가 부랴부랴 미신고 출생아로 파악된 2236명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신생아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기관에 신고할 의무를 의료기관에 부여하는 출생통보제 도입 입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지만 그동안 뭐 하다가 이제야 부산을 떠느냐는 비난을 정부도, 정치권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2017년 ‘투명인간 하은이’ 사건을 계기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고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했다. 미신고 출생아인 하은이는 친부모의 학대를 받다 숨진 지 7년 만에야 친부모의 자수로 같은 해 1월 그 존재가 알려졌었다. 정부 발표 후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됐다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지금의 21대 국회에도 15건의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문턱을 넘진 못했다. 의료계의 반발이 발목을 잡은 주된 원인이었다. 출생신고 의무 부여에 따른 행정업무 부담과 법률적 책임을 지기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들이 대부분 그런 의무를 의료기관에 부여하고 있는데 우리만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야는 국회에서 조속히 출생통보제 도입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아울러 출생통보제 도입이 의료기관 밖의 출산을 늘리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산모의 익명을 보장하는 출산보호법도 동시에 제정돼야 한다. 귀한 생명이 태어났는데 사회적 존재를 부정당하고 살해 등 범죄의 피해자가 되게 하는 국가적 수치를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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