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신한금융, 6000억 펀드 이관 '진퇴양난'…법적 한계 산적[마켓인]

지영의 기자I 2023.01.20 10:14:06

신한금융, ‘신기사조합→벤처조합’ 변경 추진
업계선 “실무 모르니 저런 결정 내려”
없던 사례에 유권해석에 의존해야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신한금융그룹이 신한캐피탈에서 운용 중이던 6000억원 규모 신기술투자조합 펀드를 타계열사로 이관을 추진해 그룹사 내에 혼란이 일고 있다. 업무 통합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입장이나, 이관 전에 넘어야 할 법률적 한계가 적지 않은 상황이어서다.

◇ 법적 한계·금융 실무 배제한 경영전략 추진에 ‘일대 혼란’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은 최근 그룹사 내 전략적 투자펀드인 ‘원신한커넥트신기술투자조합(원신한커넥트펀드)’ 1호·2호를 신한벤처투자로 이관을 추진하고 있다. 펀드는 각각 3000억원, 총 6000억원 규모로, 그동안 신한캐피탈이 운용해왔다. 그룹 측은 빠르면 1분기, 늦어도 상반기 내에는 이관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그룹의 전략적 펀드 이관 추진이 시작부터 암초를 만났다는 점이다. 펀드 이관에 법적·실무적 한계가 많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법적·현실적 한계에 대한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모양새다.

먼저 원신한커넥트펀드는 신기술사업투자조합으로, 신기술사업금융사업자(신기사)만 결성 및 운영이 가능하다. 펀드를 넘기는 신한캐피탈은 신기사인 반면 신한벤처투자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다. 신기사가 결성한 투자조합을 창투사가 넘겨받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신기사와 창투사는 관할 부처 및 적용받는 법령부터 다르다. 신기사는 현재 금융위원회 관할로, 등록 및 관리감독은 금융감독원 소관이다. 운용 규제 및 변동 등은 여신전문금융업법의 규제를 적용 받는다. 반면 벤처투자 부문은 중소벤처기업부 관할로, 벤처투자법에 따라 운영된다.

[표=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윗선 결정이라 추진은 해야겠고”…신한금융, 시나리오 고심

법적 한계로 인해 원신한커넥트펀드는 당분간 신한캐피탈 산하에서 계속 관리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신한금융그룹 내부에서는 경영전략 강행을 위한 추진 방안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이관 과정에서 발생할 그룹내 손실을 최소화 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나, 관계 정부부처나 외부 기관의 법률 자문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룹 차원에서 희망하는 유력한 방안은 정부에서 현재 신기사조합인 원신한커넥트펀드를 벤처투자조합으로 변경하는 것을 허가해주는 방향이다. 벤처투자조합으로 변경 시 창투사인 신한벤처 측이 넘겨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형태 변경은 이례적인 방향으로, 관련 법적 근거가 없어 정부의 유권해석에 의존해야 할 전망이다.

정부에서 허가를 받아 변경이 가능해질 경우에도 6000억 규모 펀드 전체를 고스란히 이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기사조합의 경우 투자 가능 기업 제한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창투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설립 7년 이내의 중소·벤처기업에 40% 이상 투자해야 하고, 투자 업종에 제한이 있다. 펀드가 보유한 지분 중 일부는 이관 이전 시점에 정리해야 할 전망이다.

관할인 양대 부처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이미 운영하는 조합에서 다 투자금 집행을 해놓은 상태라면 현실적으로 변경 이관의 실익이 있을 지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며 “통상 펀드를 청산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을 쓰는게 효율적이다. 이제껏 조합 형태 변경 방식으로 하겠다고 한 사례가 없고, 그렇게 할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측에서도 “(해당 추진 방향은)신기사 관련 규정에 없는 내용”이라며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변경에 대해 긍정적인 유권해석 및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남는 방안은 두 가지다. 그룹 펀드에 담긴 지분을 신한벤처투자 측에서 펀드를 조성해 선별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지분가치 평가 문제 및 신한벤처투자 측의 제한적 매입 여력으로 해당 방안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펀드를 청산해서 정리한 후 일부 지분 및 잔여 대금을 넘기는 방안도 있으나, 그러나 현재 시장 및 경기 침체를 감안하면 강제 청산은 녹록지 않은 결정일 수밖에 없다.

펀드를 통해 투자 받았던 기업들 입장에서도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신한캐피탈 측은 이미 6000억 자금의 상당부분을 수십여개의 기업에 투자한 상태다. 펀드 이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분 매각에 투자 기업 측에서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 관할 기관 유권해석 받아야…혼란

업계에서는 실무를 모르는 이례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투자업에 대한 실무적 고려가 부족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것.

한 VC업계 관계자는 “경영 일선에서 신기사나 VC 관련 실무에 무지해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라며 “슬픈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까지 유례가 없는 사안인데, 금융사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니 두 부처가 머리 맞대고 유권해석 내라고 하면 내어줄 리가 없다”며 “두 부처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은 금융시장에서는 상식”이라고 평가했다.

신한금융그룹의 경영전략 추진은 당분간 발이 묶일 전망이다. 정부의 유권해석 및 법리검토 기한을 감안하면 목표인 상반기 내 이관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변승규 법무법인 세움 변호사는 “관련 법령이 부재하기 때문에 양대 관할 기관의 유권해석을 받고, 고도의 법리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다만 일반적으로 신기사 펀드 역시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조합원 전원이 동의하는 경우 사례 검토를 통해 변경이 가능할 여지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보다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결정”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결정된 것은 아니나, 법무법인 선임 및 정부 요청 등의 절차를 거쳐 상반기 내에 추진 가능할 것으로 보고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