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부업계의 전설로 꼽히는 고(故)다케이 야스오 ‘다케후지’ 회장만큼 많은 일화와 기행을 남긴 인물은 일본 재계에서도 흔치 않다. 빌딩 유리창닦이와 파친코 종업원, 쌀 암거래 등 밑바닥 생활에서 모은 돈을 밑천으로 1966년 도쿄 변두리의 허름한 사무실에 대부업체를 차린 그의 장사 방식은 독특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의 집을 직접 방문해 빨래가 촘촘히 걸려 있는지, 부엌과 화장실은 제대로 청소돼 있는지 꼼꼼히 체크했다. 살림을 잘하는 주부라면 돈을 꼭 갚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손에 반지나 장신구가 주렁주렁 걸려 있으면 사치를 즐긴다고 보고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문란한 사생활과 안하무인격의 전횡, 사원들에 대한 불법 감시 및 암흑세계와의 거래 의혹 등으로 사망(2006년 8월)전까지 평생 어두운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자신은 철창 신세를 졌고 회사도 파산으로 간판을 내렸다. 고리대금업자라는 혹평 속에서도 한때 납세 1위의 부호 자리에 오르기도 한 그였지만 스캔들로 얼룩진 탈선 경영의 대가는 엄혹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거의 잊혀진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그의 이름을 불러낸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최근 우리 경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그의 장사꾼적 코멘트를 한마디 새기고 싶어서다. 주택시장, 금융시장 등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진 초대형 사기 행각을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가려내고 범죄자들의 덫을 피해갈 수 있을지 분노와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서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신년사에서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조직폭력범죄를 뿌리 뽑자”고 말했지만 한국은 지금 힘없고 선량한 국민들이 지능적 경제 범죄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관이 “조직폭력배들이 정치인을 뒷배로 기업인 행세를 하면서 국민을 괴롭히는 나라가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한 것도 조폭·사기꾼이 떵떵거리는 나라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언론은 쌍방울, KH필립스 그룹을 정조준한 발언이라고 분석했지만 법의 감시와 단죄 대상이 돼야 할 곳은 이들 외에 어디에든 널려 있다. 세입자 등골 빼먹은 빌라 전세 사기와 펀드 환매 중단으로 수많은투자자를 벼랑으로 내몬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처음부터 부당한 수익을 노린 조직적 악질 범죄다. 피해자들의 지식·정보 부족과 감독 당국의 무관심 등을 파고들며 자란 독버섯들이다.
법과 제도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될수록 지능형 경제범죄 조직의 활동 공간은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개인 투자자나 소비자가 정신 줄을 잠깐만 놓아도, 조금만 더 편안하고 더 높은 수익을 좇으려 해도 범죄 씨앗은 순식간에 더 멀리 퍼지고 더 큰 피해를 열매로 남길 가능성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면 다케이 회장의 장사 방식에서 구할 해답도 명확해진다. 개인과 정부·사법 당국이 지독하리만치 눈을 크게 부릅뜨고 현장을 확인하고, 집요하게 범죄 조직을 감시·추적해야 하는 것이다. 범죄를 막을 그물은 보다 촘촘하고 튼튼해야 하며 처벌과 수익 몰수는 몇십 배, 몇백 배 더 엄하고 가혹해야 한다.
장사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완을 발휘했지만 다케이 회장은 재산을 키우고 지키는 과정에서 법과 도덕을 우습게 알다 몰락을 자초했다. 건강한 부, 건전한 자본주의를 비웃으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잠재적 범죄자들이 기억해야 할 반면교사의 대상이다. 우리는 법을 조롱하며 사각지대에서 활개치고 다녔던 지능형 경제범죄자들을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할 기회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금융감독원장은 물론 요직 곳곳에 검찰 출신이 포진한 윤석열 정부는 ‘검찰공화국’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 범죄의 싹을 잘라내고 흙탕물만 깨끗이 치워도 윤 정부를 향한 비판은 두더지 게임의 승자 찬사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