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누군가에게는 갈증 해소의 수단으로 이용되지만 불을 끄는 데도 사용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흥을 돋우는 데 그치지 않고 불안한 심리를 잠재울 때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음악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 신체·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직업이 있다. 바로 음악치료사다. 스냅타임이 음악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곽은미(53·여) 한빛음악심리상담센터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22년 차 음악치료사가 되다
22년 차 베테랑 음악치료사인 곽씨는 과거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동안 그는 직업적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곽씨는 "성취감을 위해 도예나 그림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지만 잠깐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배 아플 때 듣는 음악, 머리 아플 때 듣는 음악 등 상황과 기분에 맞게 듣는 음악들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곽 센터장은 음악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4년 당시 한국에서는 음악치료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 없었다. 그 길로 미국 유학길에 나선 곽 센터장은 음악치료를 전공하면서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음악치료사가 된 곽씨는 음악의 리듬적인 요소나 감성적인 요소를 이용해 신체·심리를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실제로 뇌졸중으로 마비를 겪어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 정박자인 군가를 들려주며 걷기를 연습시키면 절뚝거리는 걸음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음악치료를 받는 대상은 미숙아부터 죽음을 앞둔 사람까지 다양하다"면서 "엄마 뱃속에서 지나치게 일찍 나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거나, 죽음을 준비하는 본인과 그 주변인을 돕는 것도 음악치료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곽씨는 현재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대하고 있다.
부작용 없는 음악치료 통해 뇌졸중 환자 소리 낸 적도
음악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다.
곽씨는 "안정적이고 친숙한 음악을 통해 환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유도하는 치료인 탓에 환자가 공격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면서 "특정 음악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하면 다음에 환자가 스스로 그 음악을 들었을 때 그 감정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엄마가 불러줬던 자장가를 들으면 언제든 엄마를 만난 것 같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곽씨는 최근 치료한 환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지난 4월에 치료를 시작한 환자를 꼽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5년이 흘렀지만 환자는 작년 말이 돼서야 조금씩 인지가 돌아오기 시작했다.더 빠른 속도로 인지능력을 깨우기 위해 보호자가 택한 것이 음악치료였다. 곽씨는 "환자를 위해 5개월간 한글 자음을 노래로 만들어 불러주고, 부르게 시도하는 등의 음악치료를 계속해온 결과 지난주 환자가 드디어 스스로 명확하게 '아-에-이-오-우'를 소리내 발음할 수 있게 됐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이어 “열심히 치료하면서 환자에게 이러한 성과가 났을 때 큰 성취감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서 “병원에 갔을 때 나에게 활짝 웃는 환자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곽씨의 현재 목표는 이 환자가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치료하는 것이다.
공감능력 필요한 음악치료사, 기계 대체는 불가능해
음악치료사의 가장 큰 장점은 기계나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점이다. 번역은 번역기가 대신할 수 있고, 계산은 기계가 할 수 있지만 인간의 심리를 치료하는 일은 같은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곽씨는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여든이 되든 아흔이 되든 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서 “내가 손을 놓지 않는 한 평생 음악치료사라는 이름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곽씨가 음악치료를 배우기 시작했던 1994년과 달리 현재 국내에는 음악치료학과가 다수 개설되어있다. 1998년 이화여대, 숙명여대에서 음악치료대학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12개의 대학원에서 음악치료학과가 개설되어 있으며, 2개의 대학에서는 학부 전공으로도 개설해 음악치료사를 양성 중이다.
그는 “석사의 경우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치료에 관심이 생겨 진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혀 음악치료와 관계없는 학부 전공을 졸업하고 음악치료 석사과정에 진학하는 예도 많다”면서 “학부든 석사든 자신이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음악치료사에게 필요한 능력에 관해 묻자 곽씨는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과 동시에 ‘공감능력’을 꼽았다. 내담자의 상황과 이야기를 100%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깊게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능력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자원봉사’를 꼽았다. 특히 어려움을 겪는 독거노인 등과 말벗을 하는 자원봉사를 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힘든지, 재밌는지에 대해 스스로 느낄 수 있다. 그는 “음악치료사는 이야기하는 직업보다는 들어주는 직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언했다.
적은 수입 감당해야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보람 있어
음악치료사는 오랜 기간 공부가 필요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많은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게 단점이다.
평균적으로 음악치료사 초년생이 받는 금액은 시간당 3만원 정도. 하루에 담당하는 세션이 많지 않으면 그만큼 벌 수 있는 금액도 적다. 게다가 음악치료라는 분야가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만큼 정규직 채용 기회도 적은 편이다. 병원이나 복지 시설 등에서 정규직 음악치료사를 일부 채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설 센터나 복지관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곽씨는 “음악치료사를 꿈꾸고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항상 “돈도 안 되고, 명예도 없지만, 보람은 많아, 그런데도 하려면 해”라고 말해준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유튜브를 통해서도 음악치료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전문 분야인 장애아동들을 상대로 무료 음악치료를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치료사를 꿈꾸고 있는 이들, 배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음악치료 이야기를 전달하고도 있다.
곽씨의 최종 목표는 음악의 치료기능을 좀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는 “세상에 신체·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음악 치료를 이용해 그들을 힘이 닿는 데까지 도울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스냅타임 이다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