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성인이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은 것도 죄라면 그게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맞나요? 아니면 성소수자는 국민도 아닌가요?” 본인을 남성 동성애자라고 밝힌 강호민(가명·31) 씨는 연신 한숨을 쉬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 2017년, 육군 참모총장이 군내 성소수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해 대대적으로 헌병과 군 검찰이 성소수자를 색출해 수사하고 법정에 세운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군 검찰은 한 명의 성소수자 군인을 통해 그 군인이 누구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는지 휴대폰을 통해 알아냈고 군인권센터는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수차례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육군에서 이러한 성소수자 색출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지난해 말부터 해군에서 3명의 성소수자 군인이 해군 헌병과 군 검찰에서 수사받고 있다고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군형법 96조의 6이라는 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법이 어떤 법이고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스냅타임이 찾아봤다.
성인이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해도 처벌하는 법
군형법 92조의 6은 추행죄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스냅타임이 확인한 결과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강제추행, 성추행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군형법 92조의 6은 상대가 동의하지 않은 추행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도 처벌하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군형법 92조에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처벌하는 별도의 조항들이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조항은 몇십 년간 처벌한 사례가 없어 사문화된 규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2017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를 색출하라고 명령을 내려 다섯 명의 간부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전역 후 민간법원(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게다가 현재 헌법재판소에도 12명의 피해자가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군에서 또 3명의 성소수자 군인을 수사 중이라고 군인권센터는 밝혔다. 군인권센터에 의하면 해군에서 수사를 시작한 원인은 한 군인이 병영생활상담관에게 본인의 성적지향을 밝히고 상담을 한 뒤 상담관이 상부에 이를 알리면서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성소수자이냐”고 묻고 휴대폰을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한 후 카카오톡 내용을 뒤져보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소수자냐 묻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수사관은 해당 군인들에게 성소수자 데이팅 앱 시연도 요구했으며, 이로 인해 또 다른 성소수자 군인들을 색출해 수사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수사 도중에는 “성 관계 포지션은 어떤 것인지,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가진 것인지, 사정은 했는지 안했는지” 등을 묻는 등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군인권센터는 밝혔다.
2017년 폐지안 발의됐지만, 법사위원장 “하늘의 섭리에 반하는 것”
이와 같은 인권 침해가 논란이 되자 지난 2017년 정의당 김종대 의원을 포함한 10인의 국회의원이 군형법 92조의 6을 폐지하는 안을 발의했다. 당시 의안 제안 이유에 대해 의안원문에서는 “제92조의6은 폭력성과 공연성이 없는 동성 간 성행위까지 처벌함으로써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고, 동성 간 성행위가 이성 간 성행위와 달리 형벌로서 처벌해야 할 정도로 군 기강 및 군 전투력 보존에 위해가 있다는 것은 전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는 피해최소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라고 밝혔다.
이어 “동성애를 비범죄화하는 국제인권법적 추세에 따라 2012년 유엔국가별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 제92조의6의 폐지 권고를 받았고, 2015년 11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도 폐지를 권고하였다”며 군형법 제92조의 6을 삭제하는 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스냅타임이 국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이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심사될 당시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군의 성 도덕과 군 기강을 와해시킬 수 있는 동성애 군인의 성행위 금지는 유지가 꼭 되어야만 한다”라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해 지휘관들의 의견을 취합한 적 있냐” 물으며 송영무 장관에게 “지휘관들과 함께 이 법안에 잘 준비하고 대응하라” 라고 말했다.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더 나아가 "남성 간 항문성교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며 "군 기강 문란 뿐만 아니라 에이즈 확산을 막는 데도 이 조항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또 ”하늘의 섭리에 반하는 것"이라며 송영무 장관에게 “명확한 입장을 가지라”라고 요구했다. 법안은 2017년 5월 이후 여전히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인권단체 "존재를 처벌하는 것은 현대판 홀로코스트"
성소수자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은 12일 군인권센터의 발표 직후 ‘군은 현대판 홀로코스트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트랜스해방전선은 “스스로 내부를 보호하지 못하는 군이 어떻게 바깥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라며 “성소수자인 것이 범죄라면 우리는 모두 범죄자인가”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17년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에 대해 항의하며 군인권센터가 진행했던 집회의 “나도 잡아가라”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우리의 존재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도 13일 성명을 통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까지 형사 처벌하고, 성폭력 피해자도 가해자와 똑같이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은 국내외 인권사회의 오랜 비판을 받았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성소수자 군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국가와 사회를 위한 헌신의 무게에 걸맞게 정부는 성소수자 군인을 존중하고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한편, 해군은 대한민국 해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해군은 국방부 훈령 및 군형법에 따라 병영 내에서 이루어진 군기강 문란 행위(추행죄)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의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수사 중인 사실에 대한 보도 자제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군 측은 “군인권센터가 성소수자 보호라는 미명 하에 수사관련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개인 신상 보호를 위해 비공개 수사 중인 사항이 노출될 우려를 초래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공지했다.
군인권센터를 포함한 여러 인권 단체들과 해군의 입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성소수자 군인의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의 추행죄가 유지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성소수자 군인들의 인권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