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대표 박정호)이 지난달 창사 이래 처음으로 130여 명 되는 본사·계열사 CEO 및 임원들이 조직이 아닌 ‘나의 관점’에서 계획을 말하는 ‘2분 발표회’를 열었다. 그간 한 달에 한 번씩 박정호 사장, 이형희 미디어사업부장(SK브로드밴드 사장), 서성원 MNO사업부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참석하는 ‘뉴노멀 시프트데이(New Normal Shift Day)’ 행사를 해 왔는데 지난달엔 내용과 형식을 확 바꿨다.
특정 주제로 2,3명이 발표하고 박정호 사장과 식사하던 것과 달리, 130여 명 임원들이 각자 계획을 발표하는 스피치 행사를 연 것이다.
7월 10일과 30일,두 차례 SK텔레콤 수펙스홀(SUPEX Hall)에서 열린 ‘2분 발표회’의 사회는 박정호 사장이 맡았고, 박 사장을 제외한 계열사 CEO들과 임원들은 빠짐없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2분이었지만 3분을 넘기도 했고, 질문이 오가면 5분을 넘기기도 했다. 첫날 다 하지 못해 다시 날짜를 잡아 이틀간 진행됐다.
형식과 내용에 제약이 없다는 점에서 지식공유 강연인 테드(TED)와 비슷했다. 하지만, 사내 방송으로 중계돼 직원들이 1점부터 5점까지 각각의 임원 스피치에 점수를 매긴 점은 임원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박정호 사장의 의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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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첫 스피치 대회는 7월 10일, ‘구글이 자동차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오토를 국내에 출시하며 카카오 내비게이션을 넣어 현대·기아차와 손잡는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었다. 커넥티드카(스마트폰처럼 통신으로 연결된 차)는 SK텔레콤이 공들여 키워온 분야다.
임원들 발표 전 마이크를 잡은 박정호 사장은 “우리가 먼저 제안받았는데 (사내 협의가 제대로 안 돼) 무산됐다”며 “절박함과 위기의식이 없다면 우리가 공들인 모든 플랫폼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며, 임원들에게 건강한 긴장감을 강조했다.
SK텔레콤 한 임원은 “지난해 1월 취임사에서도 1등 회사와의 제휴와 협력을 강조하셨는데, 우리가 지도만 제공했을 때의 한계를 이유로 우물쭈물하는 사이 T맵이 빠지고 카카오 내비 지도가 들어간 걸 아쉬워한 것이다. 차량융합뿐 아니라 다른 사업도 심기일전해 분발하자는 취지였다”고 전했다. 박 사장은 이날 발언을 정리해 7월 30일 사내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임원들은 ‘피곤’, 직원들은 ‘신선’…종합 ICT 기업으로 간다
시차를 두고 진행된 이틀 동안의 스피치 행사는 SK텔레콤 본사 소속 임원들뿐 아니라 SK브로드밴드, SK플래닛, SK테크엑스 등 계열사 임원들이 총출동했고, 박 사장이 서서 사회를 봤다. 분야도 연구개발(R&D), 서비스 기획과 마케팅, 대외협력 부서 등이 총망라됐다.
임원들은 부담이었지만, 직원들은 다른 부서의 일이나 관심을 한눈에 파악해 좋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 직원은 “임원들 발표마다 직원들이 1점부터 5점까지 누구 말이 감동인가, 포인트를 잘 짚었나 등 실시간으로 점수를 매기는 게 신기했다”며 “임원들은 피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스피치 점수가 높은 임원에게 포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나, 자칫 줄세우기 논란이나 조직 내 갈등으로 번질 수 있어 포상 여부를 확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텔레콤·계열사 임원 ‘2분 스피치’의 성과는 적지 않다는 평가다. SK텔레콤은 주력사업인 통신 매출의 감소세 속에서 미디어·보안· e커머스 등의 경쟁력을 높여 종합ICT기업으로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기반이 되는 것은 전사 차원의 협업이다. 서로 무얼 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모르는, 뿔뿔이 흩어진 기업문화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직원은 “업무에 바빠 전체를 듣진 못했어도 인공지능(AI) 쪽 발표는 유심히 봤다”며 “김윤 AI리서치센터장은 우리가 안 가진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아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SK텔레콤 다른 임원은 “임원들도 정확히 다른 쪽이 뭘 하는지 몰랐지만 알게 됐다”며 “첫 날 다하지 못해 그냥 끝날 줄 알았는데 박 사장이 (다시 날짜를 잡아)모두 발표하라고 해서 놀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