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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리에 갇힌 구조조정]①선거철 더 기승 부리는 '좀비기업 연명책'

송길호 기자I 2018.02.15 05:3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전문기자] “모든 것이 정체됐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전직 고위 관료는 문재인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을 이렇게 평가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도 성과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문재인정부 들어 구조조정이란 화두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아래 진행되는 각종 반(反)구조조정정책들이 난무하면서 경제생태계의 부실이 심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논리에 휘둘린 정책의 역주행, 그에 따른 국민혈세의 비효율적 배분, 채권 금융기관들의 부실한 관리….

기업 구조조정이 미로속을 헤매고 있다. 기득권 철폐, 손실분담 등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은 사라지고 지원, 연명, 보호라는 정치적 구호만 횡행한채 구조조정의 정치화(政治化)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 건설 등 주력업종은 물론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기업 생태계는 부실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기 미봉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인은 더 커질 것”이라며 “금리상승기 선제적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치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경제의 역동성 회복은 요원하다”고 경고한다.

백운규(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말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을 방문, 텅빈 시설물을 둘러보고 있다. 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받은 성동조선은 업황 부진과 구조조정 지연으로 청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연합뉴스
◇갈팡질팡 조선업 구조조정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점 앞.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속에서도 노조의 천막농성이 한창이다. 지난해말부터 회사의 회생대책을 요구하며 실력행사에 나선 성동조선해양 노조원 10여명은 요즘 그 투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명간 공개될 외부컨설팅 결과를 앞두고 정부와 수출입은행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동조선해양과 지난해 법정관리를 졸업한 STX조선해양 등 중견 조선사들은 이미 빈사상태다. 지난해 11월 한 회계법인 실사 결과 두 회사의 청산가치는 존속가치보다 3배 이상 높게 나왔다. 국민혈세로 투입된 공적자금만 7조원(STX조선 4조5000억원, 성동조선 2조6000억원)이 넘는 상태. 조선업 불황의 파고속에서도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의 결과다.

그러나 두 회사는 다시 회생이 유력해졌다. 이달중 나올 다른 회계법인 실사 보고서에선 두 회사의 회생을 위한 ‘맞춤형’컨설팅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두 회사의 연명을 전제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 회사가 청산의 위기에서 회생으로 극적 반전을 이룬 계기는 지난 1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다. 당시 문 대통령은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를 방문, “조선 경기가 곧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며 “(조선업이) 재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겐 “금융이 빠지면 일이 안 된다”는 뼈 있는 농담도 했다. 금융권 지원을 통한 기업 회생이라는 구조조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한 이날 조선업 구조조정의 기본 방향이 명확해졌다. 한 은행 임원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력감축도 사업부 매각도 모두 물건너갔다”며 “대우조선 뿐 아니라 STX조선, 성동조선 등 중견 조선사들이 연명의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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