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DMZ를 넘어 귀순을 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의 몸에서 수 십마리의 기생충이 발견되면서 구충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입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봄가을에 구충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습니다만 해마다 40여억원 규모로 꾸준히 팔리고 있는 품목입니다.
의약품 시장조사 업체인 IMS헬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약 구충제 시장은 2012년 43억4800만원, 2013년 45억3400만원, 2014년 44억1600만원, 2015년 42억7400만원에 이어 지난해 43억1900만원으로 늘지도 줄지도 않은 채 42~45억원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의 젤콤이 17억여원으로 40% 정도를 차지하는 등 상위 10개 품목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구충제를 기생충을 전공하는 의사들은 크게 권하고 있지 않습니다. 홍성태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는 “60~70년대까지만 해도 열명 중 여덟명이 회충이 있었다”며 “50~60대 중에는 이런 기억 때문에 지금도 구충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은 회충이 거의 박멸단계라 구충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보고된 회충 감염 사례는 1건에 불과합니다. 회충은 ‘인분 비료’가 가장 유력한 매개물질인데, 인분 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회충에 감염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회충은 ‘사람 똥’에 있던 회충 알이 비료로 만들어지면서 땅에 뿌려졌다가 채소나 먼지, 손을 통해 몸으로 들어갑니다. ‘유기농 채소 때문에 회충 위험이 커져 구충제를 꾸준히 먹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는데, 유기농 채소에 쓰는 비료는 돼지나 닭똥을 발효시켜 비료로 만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십이지장충 같은 기생충은 죽게 된다고 합니다.
구충제는 한 알에 800~1000원에 불과해 가계에 큰 부담은 되지 않습니다. 만약 구충제가 한 알에 10만원이 넘는다면 이미 구충제 시장 자체가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는 기생충은 ‘간흡충’입니다. 흔히 ‘간디스토마’로 알려진 기생충인데 이 기생충은 민물고기가 매개체입니다. 민물고기를 날로 먹는 식습관 때문에 매년 800여건의 감염이 일어나고 있고, 환자의 절대다수가 5대강 유역 인근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간흡충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 원인 생물체로 담석, 담도염, 담관암의 원인이 됩니다. 간흡충에 감염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담도암 위험이 10배나 높습니다. 간흡충은 수명이 30년 정도라 한 번 들어가면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면 됩니다.
홍 교수는 간흡충 감염은 어지간해서는 증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소화불량, 피로, 식욕부진, 설사 등의 증상이 있다고 보고는 돼 있지만 사실 이런 증상은 간흡충이 아니어도 쉽게 생기기 때문에 밝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가에 살거나 민물고기 회를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증상이 없다고 해도 간흡충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을 권장합니다. 참, 간흡충은 약국에서 파는 구충제로는 잡을 수 없습니다.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만 해결할 수 있으니 주변에 민물고기 회를 즐기는 사람 중 ‘해마다 구충제를 챙겨 먹어서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검사를 권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