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파이프' 'BMW 자동차'…예술 되면 다 판다

오현주 기자I 2017.06.27 00:15:00

28일 서울옥션 '제144회 미술품경매'
'절친' 김환기 위해 직접 깎아만든
'이중섭 파이프' 추정가 2억∼3억
독일공장서 1000만번째로 생산
수입차 한정판모델 첫 경매 부친
'BMW 뉴5시리즈 딩골핑 에디션' 등
총 146점 낮은추정가 80억원어치

이중섭의 ‘파이프’. 이중섭이 제주시절에 막역한 사이던 김환기를 위해 직접 조각해 만들었다. 28일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서 추정가 2억∼3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사진=서울옥션).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절절히 적시는 대향 이중섭(1916∼1956)이 조각한 ‘파이프’가 대중 앞에 처음 나선다. ‘절친’한 사이던 수화 김환기(1913∼1974)에게 선물하려 했다는 사연과 함께다. 미술품이 즐비한 경매장에 때아닌 자동차가 등장해 주인을 찾는다. BMW가 특별히 제작한 두 종의 고급 승용차다. ‘설악의 화가’라 불리는 김종학(80)의 그림을 대나무살에 붙인 선 고운 부채도 등장해 여름맞이를 한다.

2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진행하는 ‘제144회 미술품경매’에는 그간 메이저 미술품경매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예술들’이 나서 눈길을 끈다. 총 146점, 낮은 추정가로 80억원어치에 달하는 근현대미술·고미술품 등에는 조각한 파이프와 자동차, 원로화가의 그림부채까지 다 들어 있다. 경매에서 늘 주도권을 잡던 회화작품 사이에 보란 듯 놓인, 한국 조각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작품도 특별하다.

▲‘절친’ 김환기 위해 조각한 이중섭 ‘파이프’ 3억원에

이중섭과 김환기가 막역한 사이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제주시절의 이중섭이 김환기에게 선물할 파이프를 직접 조각했다는 건 몇몇 지인에게만 전해진 얘기다. 작품의 존재를 글로 알린 건 시인 구상(1919∼2004). 1979년 미도파백화점화랑서 연 이중섭 전시에 붙인 서문에서였다. 그러나 그저 말과 글이었을 뿐 실체를 내보인 적 없던 그 파이프가 이번 경매에 모습을 드러낸다. 추정가는 2억∼3억원이다.

‘파이프’를 제작한 정확한 연도는 모른다. 서귀포 자연을 배경으로 이중섭 자신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미뤄 제주시절로 추정할 뿐. 담뱃대 4개의 면 전체는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모양새다. 태양 아래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사람, 허리를 굽힌 채 밧줄을 끄는 사람, 더불어 이중섭의 삽화나 은지화에서 자주 볼 수 있던 밧줄에 매달린 게 등을 새겨 넣었다. 그림 외에 조형감각까지 갖췄던 이중섭의 귀한 작품이다.

이중섭의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1952~1953). 28일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서 추정가 5억 5000만∼9억원에 출품됐다(사진=서울옥션).


경매에는 이중섭의 그림 한 점이 더 나온다.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1952∼1953)이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뒤엉켜 노는 장면을 잡아낸 작품은 실제인지 꿈인지 불분명한 한 가족의 유쾌한 일상을 그렸다. 이중섭이 가족을 떠올릴 때는 늘 그랬듯 밝은 화면 속 환한 표정들이 그림을 채운다. 안팎을 색으로 나눈 화면배치가 독특한 애잔함이 묻어나는이 작품은 추정가 5억 5000만∼9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권진규 실존인물 두상·김종학의 부채도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설치작품 ‘라이프 이즈 드라마’(1990)가 추정가 2억 5000만∼4억원에 선뵌다. 앤틱 캐비넷 안에 TV모니터를 달고, 그 위에 가부좌를 튼 형상의 또다른 TV모니터와 안테나, 인도네시아 그림자극에 등장하는 인형 등을 차곡차곡 올렸다. 모니터에선 행성·해양식물·올림픽·‘다다익선’ 등 26분37초짜리 영상이 쉼 없이 돈다. 백남준은 지난달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억 6000만원(460만홍콩달러)에 판 ‘수사슴’(1996)으로 10년 만에 작가 최고가를 깼던 터. 그 상승세를 증명할지 관심이 모인다.

백남준의 ‘라이프 이즈 드라마’(1990). 28일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 추정가 2억 5000만∼4억원의 가격표를 달았다(사진=서울옥션).


‘한국 조각의 선구자’인 권진규(1922∼1973)의 두상 브론즈 ‘명자’(1966)는 경매에 흔치 않은 조각품으로 주목받는다.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명자’는 권진규에게서 미술을 배우던 학생 선자의 친구로 알려졌다. 그는 모델로 주변 지인을 자주 세웠다는데 모델을 잘 알수록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고집 때문이었단다. 추정가 4억∼7억원. 권진규에 이어 한국조각을 대표하는 이영학(68)의 화강암 조각 ‘무제’(1996)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350만∼700만원에 응찰을 기다린다.

이외에도 한국 대표 근현대작가의 작품이 고르게 나선다. 57.3×91.5㎝의 비교적 아담한 김환기의 푸른색 전면점화 ‘무제’(1973)가 추정가 5억∼9억원에 출품됐다. 천경자의 ‘미모사 향기’(1977)는 4억~8억원, 장욱진의 ‘거꾸로 본 세상’(1982)은 7000만∼1억 3000만원, 박수근의 ‘초가집’(1964)은 추정가 3억∼5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30여년을 머문 설악산의 자연을 수없이 옮겨내 ‘설악의 화가’라 불리는 김종학의 부채도 보인다. 대나무살에 모란꽃과 나비를 청량하게 그려 붙인 ‘꽃과 나비’(1997)다. 600만∼1000만원의 가격표를 달았다.

권진규의 ‘명자’(1966).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두상브론즈다. 28일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 추정가 4억∼7억원에 나온다(사진=서울옥션).


고미술품 중에선 단원 김홍도의 6첩 병풍 ‘풍속도’가 단연 눈에 띈다. 제작연도가 알려지지 않은 ‘풍속도’는 미국서 귀환했다. 밭갈이, 낚시질, 모내기와 쉼, 나룻배, 양반가, 나그네 등의 주제를 한 폭씩 그려낸 작품이다. 10폭의 ‘궁중자수매화도병풍’도 화제작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매화나무를 한땀 한땀 수놓은 작품은 민속학자 석주선이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풍속도’와 ‘궁중자수매화도병풍’의 추정가는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봐야 가격이 나오는 작품이다.

‘궁중자수매화도병풍’.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28일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선 추정가를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사진=서울옥션).


▲스페셜경매에 등장한 BMW 자동차

잘 빠진 자동차 두 대가 이번 경매에서 단연 화제다. 스페셜경매에 붙인 ‘BMW 뉴5시리즈 딩골핑 에디션’과 ‘BMW 뉴 M760Li xDrive’다. ‘뉴5시리즈 딩골핑 에디션’은 독일 바이에른주 딩골핑공장에서 1000만번째로 생산한 차량. BMW는 지난 1월 한국에 이 차량을 배정하기로 하고 주인찾기에 나섰다. 6100만원에 시작해 호가를 올린다.

BMW의 한 관계자는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까 고민하던 끝에 경매에 내놓기로 결정했다”며 “차량에 제공하는 여행패키지와 주요 소모품 교환, 차량 정기점검 서비스 등을 포함하면 2000만원 상당의 혜택이 따른다”고 말했다. 국내 수입차업체가 한정판 모델을 경매로 판매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낙찰자는 독일 딩골핑공장, BMW박물관 등을 투어할 수 있는 2인 여행권(1000만원 상당)과 차량 구입일로부터 8년 또는 주행거리 16만㎞까지 주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스페셜경매에 나서는 ‘BMW 뉴5시리즈 딩골핑 에디션’. 28일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서 6100만원에 시작해 호가를 올린다. 국내 수입차업체가 한정판 모델을 경매로 판매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사진=서울옥션).


또 다른 한 대인 ‘뉴 M760Li xDrive’는 국내에 단 2대뿐인 한정판. ‘프로즌 다크 브라운 메탈릭’이란 색상으로 눈길을 끄는, BMW 7시리즈 중에서도 최상위모델로 소개됐다. 시작가는 1억 9500만원.

미술품 컬렉터가 대부분인 경매장에서 진행하는 첫 판매지만 굳이 미술품경매 응찰자에게만 기회를 한정하진 않는다. 서울옥션과 별도로 BMW는 자체의 차량 경매 신청을 받았다. ‘예술’로 인정받은 자동차경매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이번 경매를 바라보는 색다른 관심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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