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들어선 ‘대주 피오레’ 아파트. 2006년 처음 분양시장에 나온 이 단지는 당시 주택 수요자들에게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중대형(전용면적 165~198㎡)으로 이뤄진 2000가구 규모의 대단지인데다 분양가 역시 한 채에 10억원 이상의 고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양 다음해 주택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이 아파트는 대거 미분양 사태에 빠졌다. 결과는 시공사(대주건설) 부도와 집값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 단지를 공급한 대주건설은 전체의 70%에 달하는 미분양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부도 처리됐고, 10억원에 달하던 집값은 현재 3~4억원대로 떨어졌다.
‘땅에 울타리만 치면 돈이 모이는 사업’. 아파트 개발사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 말은 시장 호황기에 국내 건설사들이 아파트 공급에 열을 올린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주택 재고량이 많이 부족했던 터라 아파트처럼 대량 공급이 가능한 주택 개발사업은 돈다발을 긁어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됐다. 이 과정에서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선분양’이었다. 건설 계획이 마련되면 우선 입주자들을 끌어모아 건설비용을 마련한 뒤 집을 짓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주택법 개정으로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이후 주택사업에 뛰어드는 업체 수는 우후죽순 늘어났고,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데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하지만 시장 침체기에는 용인 공세동 대주 피오레 아파트처럼 미분양 급증과 업체 부도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하면 건설 자금 조달이 힘들어져 부도 위기에 내몰리는 건설사가 속출하고, 분양 계약자들도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떼일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델하우스와 실제 건설된 모습이 달라 허위·과장광고 등의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크다.
주택 보급률이 102%로 과잉 공급시대를 맞으면서 이 같은 선분양 중심인 주택 공급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데일리>가 지난 10월 창간 1주년을 맞아 건설·부동산 전문가 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2%가 10년 후에는 후분양 비중이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본지 10월 2일자 15면 ‘10년 후 주택시장’ 참조>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후분양 방식에 대한 제도적·기술적 연구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04년 정부 차원에서 ‘후분양 전환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지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일부 ‘준공 후 미분양 단지’를 제외하면 민간 건설사가 후분양을 선택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이 투자에서 실수요 위주로 재편된 현 시점이 후분양제를 재추진할 적기로 보고 있다. 주택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선분양에 따른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만큼 체계적인 후분양 활성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데다 대량 공급이 가능한 택지도 크게 줄면서 수요자가 살 집을 고를 수 있는 후분양 방식이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후분양을 위한 다양한 개발 방식과 자금 조달 기법에 대한 연구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