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5th 마켓프론트]세금 더 내려는 부자, 세금 덜 내려는 부자

김재은 기자I 2011.11.04 10:29:00
마켓in | 이 기사는 11월 03일 13시 35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버핏세(Buffet rule). 투자의 귀재 워렌버핏이 지난 8월 미국의 재정위기를 보다 못해 주장한 연 소득 100만달러 이상의 부자증세 방안이다.

미국은 모두 침묵했고, 프랑스는 호응했다.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 소시에떼제네랄 은행 최고경영자인 프레데릭 우데아, 에어프랑스 최고경영자 장시릴 스피네타, 정유업체 토탈(Total)의 최고경영자 크리스토프 마르주리 등 16개 기업대표와 임원들은 “자본 흐름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부자들이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특별 기부세를 신설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요구한 증세의 핵심은 ‘우리(부자)는 프랑스의 시스템과 유럽 환경의 혜택을 받은 계층’이라는 점이다. 어떤 계층인들 사회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않았으랴마는, 그런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해온 만큼 사회적 책임도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2대기업의 편법 승계과정을 지켜본 우리에겐 낯설면서도 부러운 풍경이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사장은 1996년 삼성에버랜드 주주배정 전환사채(CB) 발행때 실권한 계열사와 임원들을 대신해 45억원을 들여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주당 전환가액은 7700원으로 당시 에버랜드 가치(8만5000~23만원)의 3~9%에 그쳤다.

에버랜드 지분가치가 최소 1조3000억원(주당 213만원)으로 불어난 과정에서 그는 부친 이건희 회장에게 받은 61억원에 대한 증여세 16억원만을 냈을 뿐이다. 삼성에버랜드 헐값 CB 발행은 2009년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정서적으로까지 무죄라고 보긴 어렵다. 판결 당시 팽팽했던 소수의견(6대5)도 주주배정 ‘형식’만 빌렸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3자에게 저가에 발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현대차(005380)그룹, 아니 정확히는 정몽구 회장 부자가 2001년 설립한 물류업체 글로비스(086280)는 계열사의 전폭적인 지원성 거래에 힘입어 정의선 부회장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줬다. 정 부회장은 이재용 사장보다는 조금 적은 30억원을 출자해 현재는 2조원 이상의 부를 보유하고 있다. 과세당국인 국세청은 정몽구 회장 부자가 100% 출자해 설립한 글로비스에 대해 “세금부담 없이 재산을 무상 이전시켜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과 경영권을 확보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지으며, 과세에 나선 상태다.

다행히 최근 개정상법을 통해 사업기회 유용금지 조항이 신설되고, 세제개편안에 일감 몰아주기 관련 과세방안도 마련되는 등 편법적 부의 이전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가 촘촘해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들도 그에 못지 않게 진화중이다. 기아차는 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 관련 70억원의 법인세 추징 소송에서 김앤장 출신의 변호사를 대거 포진시키며 대응에 나섰다. 동국제강(001230), 영풍(000670) 등 중견기업 총수일가도 일감몰아주기로 의심되는 계열사들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세부담을 피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재정위기에 휘청이는 지금, 미국과 유럽에선 세금을 더 내겠다는 부자들이 앞다투는데, 우리네 부자들은 여전히 세금 줄이기에만 혈안인 모습이다.

‘책임 없는 특권’이 몸에 베인 것일까.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엄격한 절차를 거쳐 가업을 승계받아 경영하는 게 버거운 것일까. 하지만 1%와 99%의 대결로 압축된 자본주의의 상징 ‘월가’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존경받는 부자의 ‘한국판’은 아직 우리에겐 섣부른 기대인 걸까.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5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5호 마켓in은 2011년 11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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