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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③계엄의 밤이 저물고 탄핵의 낮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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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 기자I 2025.12.04 01:25:25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2024년 12월 3일,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목격했다.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초유의 사태였다. 계엄과 탄핵, 조기 대선을 거치며 사회는 깊게 갈라졌다.

이 시리즈는 그 시기 국회를 출입하며 모든 순간을 지켜본 기자의 기록이다. 국정 혼란과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 비상계엄 과정과 그 이후를 목격자의 시선으로 덤덤히 서술한다.


“재석 190, 찬성 190으로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날짜가 바뀌어 4일 밤 1시께 다행스러운 소식이 올라왔다. 현장 후배들은 카카오톡방을 통해 계엄 해제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됐다고 전해왔다.

사필귀정이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까, 꿈 꾼 듯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국회가 이를 무력화했다. 이젠 다시 윤석열의 시간. 과연 그가 이를 따를까.

국회 본청 앞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던 국회 관계자들은 일부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은 계엄군에게 “이제는 물러가라”면서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고 했다.

주섬주섬 계엄군도 물러 나와 국회 본청 바깥에서 대기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상황 종료를 가장 크게 열망했을지 모른다.

계엄이 선포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군인들이 국회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하며 국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카카오톡방으로 계엄군을 찍은 일부 사진이 올라왔다. 현장 기자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었다. 일반 보병은 만지기 힘들 값비싼 기관단총에 야시경까지 찼다.

다부진 몸매에 군복도 잘 어울렸다. 세계적으로 우리가 자랑할 만한 최정예 부대인데, 그들이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반란군’ 소리를 듣는 게 안타까웠다.

이렇게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도 될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유혈충돌이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자제하지 않았다면 큰 충돌이 빚어질 뻔 했다.

부당한 명령, 특히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명령에 대해 그들은 태업으로 일관했다. 막말로 주변 기자들, 카메라 없는 상황에서 마음만 먹었으면 충분히 국회 보좌진들을 제압했을 것이다. 총이 없더라도 충분히 ‘줘 패고’ 끌어 냈을 것이다.

이런 끔찍한 상황까지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책임을 졌을까. 그는 우리 군, 더 나아가 민주시민들에게 모욕감을, 우리 국민에게는 크나큰 불안감을 안겨줬다.

“군인들 철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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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 열을 지어 계엄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국회 보좌진들은 그들을 바라봤다. 일부 시민은 그들에게 항의를 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모두들 말 없이 떠났지만 그중 한명은 “죄송하다”면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모습은 영상으로 찍혔다. 이를 본 시민들의 동정을 샀다. ‘그들이 무슨 죄냐...’

국회의사당 정문 밖에서도 시민들의 항의는 이어졌다. 일부 군용 차량은 시민들에 막혀 옴짝달싹 못했다. 철수를 하게 비켜달라고 군인들이 시민들에 애원해야할 상황이었다.

전쟁은 노인이 일으키고 희생은 청년들이 한다고 그랬던가, 일은 서울대 법대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고루한 엘리트들이 벌였고 그 후과는 우리나라 국방을 위해 헌신하려고 입대한 청년들이 졌다.

국회 안에서는 우 의장이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계엄법 3조 ‘계엄 선포의 공고’ 조항을 들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는 그 이유, 종류, 시행일시 등을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 아무런 통고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국회의원의 국회 진입까지 막았으니 불법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어 우 의장은 “지금 대통령실로 (해제안을) 보내는 과정에 있는데, 그래서 그게 가게 되면 지체 없이 해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절차상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게 됐지만 본회의장 내 의원들은 좀처럼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계엄해제요구 통지를 보내도 윤 대통령이 따르지 않으면 상황은 종료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엄 시작부터 법과 절차를 무시했는데 해제 요구를 무시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이는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로도 계엄군에 2차·3차 계엄을 하면 된다며 국회본회의장 진입을 종용한 것으로 후에 드러났다.

당시 민주당 원내부대표를 맡고 있는 박성준 의원도 소리쳤다. 본회의장 통로를 오가며

“윤 통이 다시 비상계엄을 할 수도 있답니다. 외곽에 (병력이) 준비 중에 있기 때문에, 그 상황 즉시 우리가 해제 요구안을 또 해야 될 것 같아요.”



우 의장도 거들었다.

“우리 군 지휘관과 장병 여러분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비록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따라 국회로 군이 출동했지만,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에 따라 즉각 철수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함께 성숙한 우리 군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하는 어떤 위헌, 헌법적 명령도 단호히 거부해서 헌법과 국민을 수호하는 국민의 군대로서 군의 책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해주기 바랍니다.”

상황이 정리되는 분위기로 접어들자 각당 대표 주자급 의원들이 나와 기자들에게 한 마디씩 했다. 의원들은 본인들이 계엄 해제에 일조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고 기자들은 그 상황에 대한 해설과 논평이 필요했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다. 윤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었던 그였지만 계엄과 관련해서는 단호했다. ‘위헌적 계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를 보면서 ‘이제 정치인이 다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새벽 미명이 다가오던 오전 4시께 윤 대통령이 계엄해제 의결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마저도 무시하면 국민의 뜻에 반한 ‘진짜’ 반란이었다.

그나마 이 선에서 멈춰준 것이 다행이라는 점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계엄 발동이 술김에 한 것이라면 이제는 술을 깬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MBC 유튜브 캡처


본회의장 내 우 의장은 “제가 지금 한덕수 국무총리와 통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4시 반부로 국무회의에서 계엄해제를 의결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나긴 본회의가 끝났고 시각은 새벽 5시45분을 가리켰다. 밖은 여전히 까맣게 어두웠지만 동쪽 하늘에서 새벽 미명이 보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계엄의 밤이 지나갔고 탄핵의 아침이 밝아 왔다.

해가 뜨고 밝아진 오전, 국회의사당 안은 참담했다. 전날 밤 평상시와 다른 큰 소동이 있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국회 본청 안은 깨진 유리조각, 바리케이트로 썼던 의자들이 치워져 있었다.



국회 본청 안 로텐더홀(빨간 카페트가 깔린 곳)은 국회 관계자들이 빨개진 눈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새벽부터 의원총회가 열리는 등 숨 돌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2차 계엄을 시도할까봐 대부분은 집에 가지를 못했다.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야당은 본격적으로 탄핵안을 발의키로 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역풍을 우려해 탄핵이란 말을 잘 꺼내지 않던 민주당도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결심했다. 간밤의 계엄은 친위쿠데타이자 이를 일으킨 대통령은 국가의 위험인물이라고 간주했다.

초안은 조국혁신당 작성안에서 많이 가져왔다. 외교, 경제 등 윤 대통령의 실정을 담은 내용과 함께 전날 계엄 선포를 주된 탄핵 사유로 삼았다. 2024년 11월말까지만 해도 ‘설마 될까’라고 여겼던 탄핵이 윤 대통령의 ‘제 발등 찍기’ 격 계엄으로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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